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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이름이 된 나무, 브라질의 시작

Los Angeles

2026.07.0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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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조의 남미 인사이드] 브라질 (1부)
나라를 만든 나무
제국을 만든 노예
브라질 국목 북대서양에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었던 숲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최상의 찰현악기 활 재료 또는 암 치료 연구의 목적으로만 벌목이 허가되고 있다.

브라질 국목 북대서양에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었던 숲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최상의 찰현악기 활 재료 또는 암 치료 연구의 목적으로만 벌목이 허가되고 있다.

15세기 말, 유럽 왕실의 의복과 고급 직물을 물들이는 붉은 염료는 권력과 부, 명예의 상징이었다. 1500년, 브라질 북동부 대서양 해안에서 발견된 한 나무에서 불꽃처럼 선명한 붉은 염료가 추출되자 포르투갈인들은 이 나무를 '활활 타는 불'을 뜻하는 '브라질나무(Brazilwood)'라 부르며 대량으로 유럽에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브라질나무에서 얻은 붉은 염료는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그 가치와 수요는 약 150년 동안 이어졌으며 이는 포르투갈이 브라질 식민지 개척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 땅을 자연스럽게 '브라질나무의 땅(Terra do Brasil)' 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훗날 브라질 국명의 기원이 되었으며 브라질은 왕이나 영웅이 아닌, 한 그루의 나무에서 이름을 얻은 나라가 되었다.
 
붉은 나무의 운명
 
유럽은 붉은 색을 원했고, 아프리카는 브라질로 옮겨졌다.  
 
초기 브라질나무의 벌목과 염료 추출에 필요한 노동력은 주로 원주민들이 담당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가져온 질병으로 원주민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강제 노동에 대한 저항이 커지면서 노동력 확보는 한계에 이르렀다. 이에 포르투갈은 이미 서아프리카 해안에 구축해 놓은 노예무역망을 브라질과 연결했고, 1538년 첫 노예선이 브라질에 도착한다. 그 후 약 350년 동안 브라질로 끌려온 아프리카 노예는 약 550만 명에 달했다. 이는 대서양 노예무역 전체 규모의 약 40%에 해당하는 수치로, 단일 국가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이자 오늘날 브라질이 아프리카 대륙 밖에서 가장 많은 아프리카계 인구가 살아가는 나라가 된 배경이다.  
 
살바도르 '펠로리뉴(Pelourinho)' 광장 '형벌 기둥' 을 세워 노예와 범죄자들에게 각종 형벌이 가해졌던, 브라질 역사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품고 있는 장소.

살바도르 '펠로리뉴(Pelourinho)' 광장 '형벌 기둥' 을 세워 노예와 범죄자들에게 각종 형벌이 가해졌던, 브라질 역사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품고 있는 장소.

550만명의 흔적
 
그들의 노동력은 사탕수수, 금광, 커피 산업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브라질이 남미 GDP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밑거름이었다. 살바도르 바이아는 남대서양 노예무역의 주요 관문 역할을 하였다. 아프리카 서부와 중부에서 끌려온 노예들은 그들의 음악과 춤, 종교와 음식, 언어와 문화를 잃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원주민.유럽.아프리카 문화가 서로 융합되었고, 살바도르는 브라질 문화의 거대한 용광로로 발전하며 브라질을 대표하는 삼바 음악과 춤, 그리고 역동적인 퍼커션 리듬등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은 식민지 통치 체계를 구축하고 원주민과 노예들을 관리하기 위해 가톨릭 선교 활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16세기 중반, 예수회 선교사들과 사제들이 살바도르에 도착하며 교육과 행정, 종교를 중심으로 식민지 사회의 기초가 세워지기 시작했고, 1549년 살바도르는 브라질 식민지의 첫 수도로 지정되며 정치.행정.종교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한때 '신대륙의 리스본'이라 불릴 만큼 화려한 번영을 누렸던 살바도르 바이아. 황금빛 성당의 종소리와 노예선의 쇠사슬 소리가 함께 울려 퍼지던 역사지구 펠로리뉴(Pelourinho)의 돌길에는 식민지 시대의 영광과 비극이 함께 새겨져 있다.  
 
모케카 원주민+아프리카+포르투갈 문화가 만난 '3대륙의 냄비' 요리로 브라질의 역사를 담고 있는 멜팅팟이다.

모케카 원주민+아프리카+포르투갈 문화가 만난 '3대륙의 냄비' 요리로 브라질의 역사를 담고 있는 멜팅팟이다.

빛과 그림자의 도시
 
금이 만든 수도, 금은 빛났고 인간은 팔려갔다.
 
17세기 말, 브라질 내륙의 미나스제라이스에서 대규모 금광이 발견되면서 브라질 역사상 가장 거대한 골드러시가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채굴된 금은 대서양 연안으로 운반되었다. 그 최종 집결지가 바로 천혜의 항구를 가진 리우데자네이루였다. 부와 권력이 리우로 집중되자, 1763년 포르투갈 왕실은 식민지 수도를 살바도르 바이아에서 리우로 이전한다. 이는 단순한 행정수도의 이동이 아니라 브라질 경제의 중심축이 북동부의 사탕수수 경제에서 남동부의 광산 경제로 옮겨갔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금광은 단지 부의 이동만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광산 노동력 수요가 폭증하자 노예들은 브라질 남동부로 이동했고, 노예상과 중개상, 금융업자, 운송업자들까지 금을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리우는 금의 집결지이자 새로운 노예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리우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많은 노예가 상륙하는 도시가 되었다. 특히 발롱구 부두는 100만 명이 넘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브라질 땅을 처음 밟은 곳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노예 상륙지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이 유럽을 휩쓸자 포르투갈 왕실은 대서양을 건너 리우로 피신했다. 유럽 밖에서 유일하게 유럽 군주가 직접 통치한 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리우는 왕궁과 관청, 외교 공관이 들어선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이자 제국의 심장으로 거듭났다. 식민지 항구도시가 순식간에 세계사적으로도 유례없는 황실 수도로 변모한 것이다.
 
구원의 예수석상(건축기간9년) 카톨릭 교계의 신자들과 평범한 시민들이 돈을 보태어 수많은 기술자들의 도전 정신과 함께 만들어 낸 시대적인 '기적'이다.

구원의 예수석상(건축기간9년) 카톨릭 교계의 신자들과 평범한 시민들이 돈을 보태어 수많은 기술자들의 도전 정신과 함께 만들어 낸 시대적인 '기적'이다.

신앙이 세운 기적
 
20세기에 들어서며 리우는 눈부신 해변과 화려한 사교문화, 자유로운 분위기로 '열정과 향락의 도시'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도시가 지나치게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에 물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져갔다.
 
화려함과 신앙, 자유와 절제가 공존하던 시대. 가톨릭계와 보수층은 도시를 굽어보며 신앙과 도덕적 가치를 상징할 거대한 기념물을 세우고자 했다. 그 결과 코르코바두 산 정상에 두 팔을 벌려 도시를 품듯 서 있는 구원의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이 건립되었다.
 
1931년 완공된 이 거대한 예수상은 변화하는 도시의 영혼을 지키고자 했던 시대의 염원이 담긴 상징이자, 오늘날까지도 리우데자네이루를 대표하는 가장 강력한 아이콘으로 남아 있다.
 
여행 팁: 세계 5번째 면적의 브라질은 세계에서 유네스코 자연 & 인류 문화유산 사이트가 가장 많은 나라중 하나이자 지구상 가장 다양한 인종, 문화, 생태계가 혼합된 나라이다. 브라질 일주는 대서양에서 내륙 금광까지,'하나의 나라가 아닌 하나의  대륙' 을 만나는 여행이다. 아마존 체험은 정글 내의 럭셔리 롯지에서, 이동은 수륙 쌍용 전세기로 아마존 상공을 날아 도착, 귀환은 아마존 강을 따라 배로 이동한다.
 
▶브라질 일주 15박17일: 아마존, 마나우스, 살바도르, 미나스제라이스, 브라질리아, 상빠울루, 빤따나우, 렝사이스 마랑엥세스(전지역유네스코).  
 
▶출발: 8월20일/ 27년 6월17일, 8월20일  
 
▶문의: (213) 507 0020 / 카카오 ID ewsntour / www. ewsntour.com

 

유니스 조 대표
 
남미 전문 여행사 동서남북 투어의 유니스 조 대표는 17세부터 남미 전역을 누빈 베테랑 백패커 출신의 전문가다 그는 40년 넘게 쌓아온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 상품을 직접 설계하고 디자인해 왔다 모든 일정은 현지 인솔까지 책임지며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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