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일입니다. 서울의 서쪽, 연남동 어딘가에 새로 냉면집이 생겼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비주얼이며 맛이며 좀 안다는 분들이 극찬하기에 저도 찾아가 봤습니다. 스시집처럼 오픈 바(bar) 구조였는데, 주문 후 나온 냉면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냉면의 모습이었거든요.
아직 놀라긴 일렀습니다. 제가 아는 냉면집의 99%는 테이블에 식초와 겨자를 비치해 두고 있습니다. 손님에게도 간을 맞출 기회를 주는 거죠. 그런데 이 식당에는 식초도, 겨자도 놓여 있지 않았고, 마침 손님 한 분이 셰프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식초 있나요?”
하지만 돌아온 대답에 그날 와 있던 손님들은 모두 귀를 의심했습니다. “저희 집은 식초가 없습니다.” 헉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이 말은 “제가 맞춘 간에 손님들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그냥 드린 대로 드시면 됩니다”라는, 타협 불가능한 선언으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제 입맛에 간은 완벽했습니다.
다른 손님의 경험담도 놀라웠습니다. 당시 이 식당은 점심 땐 그냥 냉면집이지만, 저녁엔 반드시 1인 1주류를 주문하라고 되어 있었습니다(지금은 아닙니다). 이 손님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주문 때 ‘술 대신 다른 요리를 많이 주문하겠다’고 제안했는데, 단박에 거절당했습니다. 규칙은 규칙이라는 거였죠. 어쩔 수 없이 이 손님은 술 메뉴에서 가장 싼 팩 소주를 주문했습니다.
‘이렇게 손님을 무시하는 식당이 있다고?’ 화가 났다. 주문한 냉면이 나왔다. 맛이 없으면 혹평을 하려고 잔뜩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냉면이 너무 맛있었다. 육수를 모두 들이켜고, 팩 소주를 주머니에 넣고 나오며 생각했다. ‘다음엔 술 잘 마시는 친구들을 데리고 와야지.’
하지만 이 식당은 어느 날 자취를 감췄고, 아쉬워하던 차에 다른 장소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다행히도 냉면 맛은 예전 그대로였고, 테이블에는 여전히 식초와 겨자가 없었지만, 지금은 손님이 요청하면 제공합니다. 1인 1주류 주문 제도도 없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