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 페널티킥은 ‘11m의 러시안 룰렛’이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으로 불린다. 희생자는 주로 골키퍼였다. 11m 앞에서 상대 선수가 강하게 찬 공이 가로 7.32m, 세로 2.44m에 달하는 거대한 골대 내부 어느 지점으로 향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골키퍼가 몸을 던지고 손을 뻗어 커버할 수 있는 물리적 범위에 한계가 있다 보니 ‘알고도 못 막는’ 구역도 존재한다. 때문에 페널티킥은 ‘실수만 없다면 키커가 이기는 게임’으로 여겨져 왔다. 권력은 언제나 차는 자의 몫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북중미 월드컵에선 상황이 다르다. ‘키커가 유리하다’는 상식이 뿌리째 흔들리는 모양새다. 스포츠 데이터 전문 업체 옵타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대회 경기 중 발생한 페널티킥의 성공률은 조별리그~16강전까지를 기준으로 67.7%에 그친다. 승부차기까지 포함하면 총 59회 시도 중 20회가 실패해 성공률이 66.1%까지 떨어진다. 지난 1986년 멕시코 대회(64.7%) 이후 40년 만에 가장 낮다. 성공률 100%를 찍은 1966년 잉글랜드 대회나 1970년 멕시코 대회와 현격한 차이가 난다. 이번 대회 8골을 터뜨려 득점 공동 선두에 오른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조차 두 번의 페널티킥 찬스에서 모두 실축했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혁명적인 변화의 배경에 ‘빅데이터 분석’과 ‘고도화된 심리전’이 있다. 과거 골키퍼들이 키커의 시선이나 디딤발의 각도 등 직관과 감각에 의존해 몸을 던질 방향을 결정했다면, 최근에는 수학자 또는 과학자의 시선에서 상황을 읽는다. 소속팀 전력분석 담당자들이 상대 키커의 페널티킥 데이터를 바탕으로 밀리초(ms) 단위까지 세밀히 분석해 대응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기술은 해당 키커의 이전 수년 간 슈팅 궤적 뿐만 아니라 습관이나 행동, 호흡 방식, 도움닫기 타이밍, 상체 기울기까지 집요하게 분석한다.
골키퍼들은 ‘시간과 공간을 장악하는 심리전’도 적극 활용한다. 키커가 공을 내려놓는 순간부터 주심의 휘슬이 울리기까지 시간을 의도적으로 지연시켜 키커의 불안감을 키운다. 골라인 위에서 좌우로 크게 움직이며 골대를 좁아 보이게 만드는 공간 교란 행위도 곁들인다.
지난 10일 미국 보스턴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랑스와 모로코의 8강전이 대표적이다. 최종 스코어는 킬리안 음바페(레알 마드리드)의 결승골을 포함해 후반에 2골을 몰아친 프랑스의 2-0 완승이었지만, 전반 프랑스가 얻어낸 페널티킥 찬스의 결과는 달랐다. 음바페가 직접 키커로 나섰지만, 방향을 정확히 읽고 몸을 던진 모로코 수문장 야신 부누(알힐랄)의 방어에 가로 막혔다. 과학과 손잡은 골키퍼의 진화 이후 공격수들은 일대일로 맞서는 페널티킥보다 양팀 선수들이 치열하게 뒤엉키는 온플레이 상황에서 오히려 마음 편히 득점하는 아이러니를 경험 중이다.
한편 오는 12일(한국시간) 오전 운명의 8강전 두 경기가 잇달아 열린다. 오전 6시 미국 마이애미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노르웨이와 잉글랜드의 맞대결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출신 골잡이들의 외나무다리 혈투로 주목 받는다.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자처하는 노르웨이의 엘링 홀란(맨체스터 시티)과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바이에른 뮌헨)이 정면충돌한다.
오전 10시엔 미국 캔사스시티 스타디움에서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가 ‘다크호스’ 스위스를 상대한다. 시선은 아르헨티나를 이끄는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에 모아진다. 현재 8골로 프랑스의 음바페(파리생제르맹)와 득점 공동 선두다. 메시가 득점포를 터뜨리면 아르헨티나의 대회 2연패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