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7월 13일 오후 3시 19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의 축구 경기장 에스타디오 포시토스(Estadio Pocitos)에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전반 19분 프랑스 대 멕시코전의 첫 골이 터진 것이다. 동시에 열린 미국 대 벨기에전에서는 전반 40분 첫 골이 기록되었다. 이후 100여 년 동안 이어질 세계 최대의 단일 종목 국제 스포츠 대회, FIFA 월드컵의 시작이었다.
당시는 이미 올림픽이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었다. 수많은 종목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경쟁을 벌였다. 그런데 왜 하필 축구만 떼어서 국제 대회를 치르게 된 걸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아마추어 정신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스포츠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며 프로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변호사이자 국제축구연맹(FIFA)의 제3대 회장이었던 쥘 리메(Jules Rimet·사진)의 생각은 달랐다. 노동계급 출신의 고학생으로 그 자리에 올랐던 그는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 IOC가 말하는 아마추어 정신에 집착하면 귀족이나 부유층만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된다며 비판하고 나섰던 것이다.
국적과 계급을 막론하고 전 지구인이 하나가 되는 축제를 만들자. 리메는 프로 선수의 참여를 막지 말아야 하고, 아무리 실력 차이가 나더라도 지역 예선을 통과한 나라에 본선 출전 자격을 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유럽이 아닌 남미에서, 건국 100주년을 맞이한 우루과이가 제1회 FIFA 월드컵 개최국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이유다.
리메의 혜안은 세월이 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1954년 당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은 헝가리에 9 대 0으로 참패했고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지만 리메는 흔들림 없이 한국을 옹호했다. “지금은 한국이 처참하게 무너졌다고 해도, 수십 년 후엔 어찌 될지 전혀 모르는 일이다. 월드컵은 누구나 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월드컵이다. 그것이 월드컵이란 이름에 담긴 정신이다.” 2002년 한국은 일본과 함께 월드컵을 개최하고 4강 신화를 이룸으로써 리메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 열정과 투지를 되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