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여고생 살해사건은 경찰 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었다. 피의자 장윤기의 아버지인 경찰 간부와 담당 수사팀의 유착·증거인멸 정황에 이어, 광주 광산경찰서장이 장윤기에게 강간살인 혐의를 적용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경찰 수사 과정의 여러 허점이 검찰의 보완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이런 견제 수단이 없다면 경찰의 사건 은폐나 왜곡을 어떻게 밝혀낼 수 있겠는가.
우려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한변협은 “장윤기 사건은 보완수사권의 필요성을 보여준다”는 입장문을 냈다. 법원행정처도 “입법 정책적 결정 사항이지만 부작용을 막기 위한 보완 방안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헌법 전문가인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은 “보완수사권 완전폐지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7월 23일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임명장 및 위촉장 수여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전당대회를 앞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강경파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강행할 태세다. 이를 대변이라도 하듯 김어준씨는 장윤기 사건에 대해 “이런 정도의 사건은 1년에 몇 건씩이나 있는데”라고 언급하며 언론이 여론몰이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피해자와 유족의 억울함은 외면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개혁의 정당성을 앞세우는 식의 발언은 부적절하기 짝이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제한적인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여러 차례 밝혔고, 예외적인 경우까지 막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최종 결정은 국회에 맡기겠다고 했다. 정부도 총리실 산하에 검찰개혁추진단을 운영했지만 결국은 국회에 공을 넘기고 말았다. 그런데 국회의 입법권을 좌지우지하는 여당 지도부는 대통령의 소신이나 전문가들의 견해에 귀를 닫고 여론과는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다. 이제는 대통령이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해 주는 것이 옳다.
대통령이 여당과 국회의 권한을 존중하는 것은 미덕이다. 그렇다고 국민에게 중대한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법안에 손을 놓는 것까지 책임 있는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숙의를 통해 합리적 대안이 입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여당 강경파를 설득해야 한다. 그런 노력에도 끝내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법안이 국회를 통과된다면 헌법이 부여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도 고려해야 한다. 대통령의 헌법적 책무는 여당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입법으로 국민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