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은 몸과 몸의 접촉으로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강렬한 표현 방식이다. 의학적으로도 포옹을 하면 체내에 ‘러브 호르몬’ ‘안정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의 분비가 항진되고, 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손은 현저히 감소한다. 이성과의 만남에선 로맨스의 황홀한 형태로도 표현된다.
오랜 임상 진료 중 의미 있고 강렬했던 포옹의 기억이 떠오른다. 멕시코 오지마을에 살았던 중년 여성 환자와의 마지막 포옹이다. 그녀는 바닷가 외딴 오두막집에서 무능력한 남편, 9명의 자녀와의 함께 가난하게 살았다. 하지만 몇 년을 시름시름 앓았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검사와 치료를 위해 기르던 돼지들을 팔아 수년간 4시간이나 걸리는 엔세나다 병원을 찾았지만 병원 시설이 열악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결국 정확한 병명조차 알지 못한 채 집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으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녀의 증상을 들어보니 임파선이나 혈액 계통의 암으로 짐작됐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그녀의 가족은 나의 진료 일정에 맞춰 그녀를 샌 퀀틴기독교병원에 입원시켰다. 병원비가 하루 20달러나 해 그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친지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병원비를 마련했다.
그녀의 자녀 4명의 안내로 입원실에 들어서는 순간,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벌떡 일어나 여윈 양팔로 나를 끌어안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내 의사님, 내 의사님”이라는 그녀의 외침은 절규의 비명으로 들렸다. 죽음을 앞둔 두려움과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서러움과 억울함이 폭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나를 잡을 수 있는 마지막 지푸라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나를 끌어안은 그녀의 팔에서 느껴지는 떨림의 전율은 호숫가의 잔물결이 퍼져 나가듯 내 온몸을 휘감았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머릿속은 텅 빈 듯했고 말도, 생각도 정지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의 얼굴에선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녀들의 울음소리가 좁은 병실을 가뜩 채웠다. 그녀의 팔은 힘이 다 빠질 때까지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녀의 마지막 밤을 함께 해 달라는 가족의 간곡한 요청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살던 바닷가 외딴집으로 함께 가 밤새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그녀의 임종을 지켜봐 주었다. 그날 밤 그녀의 생명을 연장해 주지도, 마땅한 치료조차 해주지 못했지만, 그녀에게 조금의 위안은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녀와의 포옹이 나에겐 소중한 추억으로, 귀한 선물로 남아 있다.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은 단지 경험일 뿐이고, 반복하고 싶은 기억은 추억이라고 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