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AI)을 보고 있자니 기대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우리가 하던 일을 대신하는 것을 넘어 AI가 인간의 창작 영역까지 빠르게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AI가 만든 사진은 손가락이 이상하거나 그림자가 어색해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오픈AI가 2년 전 공개했던 AI 영상 생성 모델 ‘소라’의 AI 영상도 “많이 발전했네”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피부 질감과 빛의 방향, 렌즈 특성, 심도 표현까지 전문가도 실제 사진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해졌다. 영상 역시 카메라 워크와 배우의 표정, 움직임까지 상업 영화에 활용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 됐다.
필름에서 디지털을 거쳐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사진의 격변기를 겪었지만, 지금처럼 창작 영역 자체가 흔들리는 변화를 체감한 적은 없었다. 실제와 가상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는 듯하다.
며칠 전 또 다른 AI 뉴스가 이슈다. 지난해 스위스 취리히 영화제 부대행사에서 공개된 세계 최초의 AI 배우 ‘틸리 노우드’를 주연으로 하는 장편 코미디 영화 ‘미스얼라인드(Misaligned)’ 제작이 공식 발표된 것이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노우드가 수많은 실존 배우들의 연기를 학습한 AI 생성 캐릭터라며 배우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인간만의 예술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발했다.
반면 제작사 파티클6 측은 AI가 스칼렛 요한슨이나 라이언 레이놀즈 같은 배우를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술과 판단, 창의성이 AI 기술과 함께하는 새로운 하이브리드 제작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할리우드 노조는 AI 배우의 확산을 막기 위해 AI 배우가 출연할 때마다 일종의 로열티나 수수료를 부과하는 일명 ‘틸리세(Tilly Tax)’ 도입을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은 지난 2월 중국 바이트댄스의 AI 영상 생성 모델 ‘시댄스 2.0’을 통해 이미 시작됐다.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가 격투를 벌이는 짧은 영상은 실제 영화로 착각할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 화제가 됐다. 하지만 실존 배우들의 얼굴과 목소리 데이터를 무단으로 도용하고 학습했다는 이유로 저작권 논란과 윤리적 비판이 거세게 몰아쳤다.
사진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예전에는 좋은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수년간 빛을 공부하고 노출을 익히며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사진을 흔히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프롬프트 몇 줄이면 AI가 수백 장의 이미지를 단숨에 만들어낸다. 텍스트만으로 실사와 같은 사진과 영상을 뚝딱 생성해 내니 사진가와 영상 제작자들이 일자리 위협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아직 AI가 배우의 미세한 감정과 눈빛,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아우라까지 완벽하게 구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람이 직접 그린 애니메이션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감성 역시 쉽게 대체하지 못한다. 아무리 진짜 같은 AI 사진이나 영상이라 할지라도 결국 사람이 기획하고 프롬프트를 입력해야 만들어지니 창작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아직 인간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AI 발전 속도라면 이마저도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이제 중요한 것은 영화와 사진, 음악과 미술 등 인간의 창의성이 빛나던 영역으로 밀고 들어오는 AI를 막을 수 있느냐가 아니다. 진짜 고민해야 할 것은 더 똑똑해지는 AI로부터 인간만의 감성과 창의성을 어디까지 지켜낼 것인가다.
인간이 창작의 마지막 자리까지 AI에게 내어주는 순간, 그것은 기술의 진화가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AI가 인간의 조력자가 될지, 경쟁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경계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는 AI가 아니라 결국 인간이 결정해야 할 문제다. AI 만능 시대에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다움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