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나에게 묘지는 삶을 되짚는 가장 분명한 방식이었다. 파리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묘지에 들렀고 문을 닫을 때까지 산책하고는 했다. 특히 여름의 공동묘지를 말이다. 섬세하게 조각된 관과 묘비, 녹음 진 고목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그 틈으로 언뜻 드러나는 번잡한 도시의 아연 지붕. 내가 가장 아끼는 파리의 색이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토록 애쓰며 살았을 수많은 이의 묘비를 하나씩 읽어가는 일이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각자의 시절이 단 몇 개 문장 혹은 단어로 남아 있는 풍경. 그 절제된 경건함 속에서 나는 활자로만 남은 누군가의 삶을 가만히 상상해 보고는 했다. (…) “어디까지 가야 할까요?” 그들에게 물으면, 내게 나지막이 대답했다. “길이 더는 나오지 않을 때까지.”
-임세병의 『소년은 바다처럼 운다』
유럽에서는 도시 한복판에서 묘지를 만나는 일이 흔하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풍경. 프랑스 파리와 코르시카를 오가며 활동하는 미술가 임세병의 에세이집이다. 유학생·이민자라는 경계인의 삶과 시선을 섬세한 언어로 풀었다.
그에게 파리란 “인간이 세운 것이 아니라 세월이 굳혀낸 결정체, 갯벌처럼 느리게 퇴적하는 안정된 자연물”이다. “이 느린 퇴적이 파리라는 도시의 아름다움을 떠받치고, 여기 사는 사람들의 삶을 파리답게 기능시키는 비밀스러운 힘이 된다.” 요즘 TV에 등장하는 파리는 쪄 죽을 것 같은 도시지만, 그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우리는 실온에 둔 계란처럼 상해가는지, 아니면 과일처럼 익어가는지, 6월의 빛 속에서”라고 물었다.
포말이 부서지는 책 표지가 인상적이다. “삶은 확실히 육지보다 바다를 닮았지. 출렁대는 감각에 지치면서도 동시에 흥미롭다. 오래전부터 나는 파도를 좋아했다. 너무 좋아하다 보니 삶 자체가 파도화됐다는 생각도 한다. 어디로 흘러가든 부딪쳐서 부서지든 흩어지든 상관없던 시절에서, 이제는 어떤 모양으로 굴곡질지 고민하는 때에 와있다고, (…)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나요?’ 묵은 질문과 함께 오늘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