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는 ‘인간 선언(Homo duduri)’이었다.
‘두두리’는 대장장이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쇳물을 가열하고 두드려 새로운 형태를 벼려내는 대장장이의 작업은 사유하고 탐구하는 인간 본연의 주체성을 의미한다. AI의 즉답 시대에 적절한 주제이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국제도서전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다. 15세기 금속활자의 발명과 함께 시작되어 5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당시 작가들은 거리의 가판대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해서 출판업자와 직접 계약하거나 대리업자를 통해 거래했다.
지동설 묘사한 케플러의 소설
기독교 세상 풍자한 시라노의 책
삐딱한 책들은 면면히 이어져
17세기 한 과학자가 자신의 작품을 들고 이 도서전에 참가했다.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는 『꿈』이라는 소설을 출품했다. 훗날 『코스모스』의 칼 세이건이 최초의 SF소설이라고 말했던 이 작품은 지동설을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한 공상과학소설이었다. 주술의 힘을 빌려 달에 도착한 주인공은 지동설의 관점에서 우주를 묘사했다. 지구에서 태양이 도는 것처럼 보이듯, 달에서도 지구가 도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상대적인 시점을 통해 지동설의 논리적 타당성을 제시했다.
문제는 소설 속 주인공의 모친 직업이었다. 책을 읽은 사람들은 지동설이 아니라 주술로 아들의 여행을 돕는 약초 치료사인 엄마를 주목했다. 실제 케플러의 모친 직업도 약초 치료사였다. 같은 책을 읽어도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어있다. 17세기는 마녀사냥이 극심했던 광기의 시대였다. 기근과 전염병, 종교개혁,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사회적 불안정은 집단 히스테리를 불러왔다. 설명할 수 없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은 마녀의 탓으로 돌리면 된다.
마녀의 기준 근거는 15세기 가톨릭 성직자이자 종교재판관이 쓴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이었다.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라는 뜻의 이 책은 ‘여성(Femina)’의 어원이 ‘믿음이 부족하다(Fe-minus)’에서 왔으며 여자들이 악마와 계약을 맺고 재앙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고대부터 마술을 사용하고, 약물을 제조하면 남녀 불문 모두 ‘마녀(Hexe)’였지만, 중세 말부터 마녀는 여성으로 국한되었다.
케플러의 모친은 아들의 소설로 인해 마녀로 고발당했다. 그는 명망 높은 과학자였음에도 모친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녀야만 했다. 7년 만에 무죄로 석방되었지만 모진 고문과 옥살이로 쇠약해진 그의 모친은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만약 그가 소설을 쓰지 않았더라면, 국제도서전에 참가하지 않았더라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케플러와 동시대를 살았던 프랑스의 소설가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도 달과 해를 여행하는 『다른 세상(L’Autre Monde)』이란 공상과학소설을 썼다. 17세기의 인간 중심적, 그리고 기독교 중심적 세계관을 날카롭게 풍자한 내용이었다. 책은 사후에 발간되어 그는 어떤 고난도 겪지 않았다. 그 시대의 기준을 피해 가는 방법이었으리라. 중세의 마녀사냥은 사라졌을까?
얼마 전 어느 독자가 공공도서관에 신청했던 희망도서의 거절 사유가 놀라웠다. 도서의 표지와 목차에 ‘민주주의’나 ‘자유’ 같은 단어가 포함되어 있어 도서 구매를 취소했다는 답변이었다. 물론 그 도서관의 자의적인 판단일 수도 있다. 한강의 소설을 거절했던 도서관을 떠올렸다.
미셸 푸코는 자신의 저서 『헤테로토피아』에서 도서관을 무한 지식의 저장고가 아니라 특정 권력관계의 지식 체계라고 보았다. 이는 권력이 ‘진실’과 ‘정상’, ‘금기’에 개입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지식과 권력이 작동하는 공간이었다.
서고를 거닐 때 가끔 특정 시대의 권력이 규정한 ‘나쁜 책’에 대하여 생각한다.
도서전의 책들은 결국 도서관에 소장된다. 나는 도서관의 사서를 가장 좋아하지만, 모름지기 사서는 ‘8권의 책을 목숨 걸고 지켰던 아우슈비츠의 어린 사서’의 정신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부스는 웹소설 플랫폼이다. 판타지 소설에 열광하는 MZ 세대를 보면서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17세기 요하네스 케플러가 국제도서전에 출품한 『꿈』도 판타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