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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의 인문지리기행] 조선이 내친 은 제련법, 일본이 낚아채 무력 키워

중앙일보

2026.07.13 08:10 2026.07.1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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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상동광산과 일본 이와미 은산
김정탁 노장사상가

김정탁 노장사상가

영월에 가면 상동광산이 있다. 이곳은 백두대간 중 소백산맥 구간에 속한 곳으로 위쪽으로는 정선이 있고 동쪽으론 태백이 있다. 정선과 태백은 한때 석탄 산지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거의 다 폐광이 돼서 그 흔적을 찾기 힘들다. 반면에 상동광산은 세계 최대 규모의 중석(重石·텅스텐)을 매장해서인지 그렇지 않다. 이곳의 추정매장량은 약 5700만t으로 매년 100만t씩 60년 가까이 채굴할 수 있다. 중석은 대부분의 국가가 생산하지 않아 현재 전 세계 생산량의 80%를 중국이 담당한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희귀 광물을 무기화하려는 중국과 손절하려는 마당에 상동광산은 보배와 같다.

연산군 때 개발한 연은분리법
명 괘씸죄 우려한 중종, 보급 막아

이와미 은산 발견 후 손 놓고 있던 일
기술 빼가 부 축적, 메이지유신 토대

세계적 상동광산, IMF 때 헐값 매각
3D는 옛말, 광산업에 관심 가져야

영월의 상동광업소. 현재 소유 회사인 캐나다 알몬티(ALMONTY)의 로고가 분명히 보인다. [월간중앙]

영월의 상동광업소. 현재 소유 회사인 캐나다 알몬티(ALMONTY)의 로고가 분명히 보인다. [월간중앙]

중석은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데다 녹는 점도 다른 금속에 비해 가장 높다. 중석의 밀도 및 강도가 이와 같아 특수강을 만드는 데 좋은 소재가 돼서 항공기·항공모함·우주선의 엔진 부품, 미사일과 대포의 탄두, 절삭공구,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의 첨단 산업에 필수적으로 쓰인다. 최근에는 인공 태양으로 불리는 핵융합의 고성능 플라스마 성능을 개선하는 데도 활용이 돼서 ‘푸른 보석’이란 별명까지 얻는다. 더구나 상동광산 중석은 세계시장에서 표준이란 평을 들을 만큼 그 품질의 우수성을 자랑한다.

외화벌이 수단이었던 중석 수출
상동광산은 이런 좋은 품질의 중석을 40년 이상 생산했다. 물론 1916년에 발견됐지만 광산으로 빛을 본 건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다. 1950년대 중반 상동광산을 기반으로 해 공기업으로 대한중석이 세워지자 이 회사의 위상은 막강했다. 중석이 10여년간 우리나라 수출의 50% 이상을 담당한 데다 1964년 수출 1억 달러 고지를 처음 돌파할 때도 중석 수출이 절반을 차지해서다. 당시 시중에는 ‘중석불(중석을 수출해 획득한 달러)’이란 말이 회자될 정도로 중석은 우리나라 외화벌이의 주된 창구였다. 이에 따라 중석은 전후 복구와 경제발전의 전초석으로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는데 포항제철이 설립될 때도 대한중석이 출자금의 25%를 댔다.

그러나 대한중석의 이런 영광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80년대 들어서 중국산 중석의 저가 공세로 채산성이 크게 낮아지자 1994년 폐광을 해야 해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년 후에 불어닥친 외환위기로 해외에 첫 번째로 분할 매각 되었는데 상동광업소도 몇 차례 주인이 바뀌다가 2015년부터는 캐나다 회사의 소유가 되었다. 지금 당장은 어려워도 미래 가치를 보고 지켜야 할 소중한 국가적 자산이 애물단지로 취급돼 서둘러서 처분됐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당시 하이닉스반도체도 미국 마이크론사에 팔릴 뻔했는데 외환은행장 김경림이 이런 국부 유출에 제동을 걸어 지금 엄청난 이익을 창출하는 것과 크게 비교가 된다.

100여 년 전에도 광산을 둘러싼 국부 유출이 똑같이 있었다. 고종은 자신의 처조카 민영익이 갑신정변 때 김옥균 측의 칼에 맞아 난자당했을 때 한 미국인 선교사의 수술로 극적으로 살아나자, 이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평안북도 운산 금광의 채굴권을 그에게 넘겨서다. 그때 고종은 왕실 수입금으로 달랑 1만2500달러만 받고 채굴권을 40년간 양도해 미국 측이 가져간 순수익만도 1500만 달러에 달했다. 당시 이곳에 금이 얼마나 많았길래 조선인이 뭔가를 만지면 미국인이 ‘노 터치(no touch)’라고 소리쳐 여기서 ‘노다지’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그런데 고종 못지않게 한심한 군주가 또 있었는데 중종이다. 조선은 좋은 제련 기술을 갖고도 중종이 이의 확산을 막아 결과적으로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물적 토대를 마련해줘서다. 연산군 때 함경도 단천에서 획기적인 은 제련술인 연은분리법이 개발되었어도 조선에서 은이 생산되는 걸 명나라가 알면 은을 조공으로 바치라고 할까 염려한 데다 농업에 방해될 걸 우려해서 중종은 이 기술의 보급을 막았다. 그러나 이 기술이 일본으로 넘어가자 총포 구입의 재원이 돼 임진왜란 때 조총은 조선이 두려워하는 무기가 되었다. 당시 이와미(岩見)에서 은광이 발견되었어도 일본은 이에 맞는 은 제련법을 몰라 발만 동동거렸다.

일본, 연은분리법으로 세계 은 30% 생산
일본은 새로운 방식의 은 제련법이 조선에 있다는 걸 알고는 조선인 기술자 2명을 몰래 데려다가 연은분리법을 통해 전 세계 은의 30%를 생산했다. 당시 은은 국제무역의 결제 수단으로 쓰여 금만큼이나 비쌌다. 일본은 이렇게 제련된 은을 갖고 동북아의 패권까지 노렸으니 명나라를 치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각은 허풍만이 아니었다. 은을 팔아 무장을 잘 갖춘 데다 전국시대를 통해 실전 감각도 갖춰 일본의 군사력은 당시 세계 최정상급이었다. 스페인도 막강한 무적함대를 운용할 수 있었던 데는 식민지 남미 콜롬비아의 포토시 은광 때문인데 여기서 생산된 은이 전 세계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했다.

일본 이와미 은산의 제련소. 지금은 시마네현에 소재해 있는데, 제련소가 만들어질 때는 조슈 번 관할이었다. [사진 김정탁]

일본 이와미 은산의 제련소. 지금은 시마네현에 소재해 있는데, 제련소가 만들어질 때는 조슈 번 관할이었다. [사진 김정탁]

일본은 이와미 은산에서 생산된 은을 갖고 메이지유신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일본의 근대화 작업을 위한 자금도 확보했다. 도쿠가와 막부가 위치한 에도(현 도쿄)에서 보면 가장 변방인 조슈 번(현 야마구치현)이 사쓰마번(현 가고시마현)과 힘을 합쳐 난공불략의 막부를 무너뜨린 배경에는 이와미 은산이 조슈 번 관할이었던 탓이 크다. 조슈 번은 이와미 은산에서 생산된 은을 갖고 서양에서 군함과 대포를 대량으로 수입하고, 심지어 사쓰마번이 이 비싼 무기들을 사는 데도 암암리에 지원했다. 그 결과 메이지유신이 일어나기 직전 두 번(藩)이 소유한 서양식 군함의 수는 막부를 능가했다.

일본 야마구치현에 있는 조슈 번주 모리 가문의 개인 주택. 화려하고 웅장하기가 이를 데 없다. [사진 김정탁]

일본 야마구치현에 있는 조슈 번주 모리 가문의 개인 주택. 화려하고 웅장하기가 이를 데 없다. [사진 김정탁]

우리나라는 현재 천연자원에선 빈국이어도 일정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제련 기술을 갖고 있어 그나마 안심해도 좋다. 광물 채굴 못지않게 정련과 가공 기술이 중요해서다. 참고로 중국이 희토류를 갖고 전 세계를 굴복시킨 배경에는 베이징대 화학과 교수 쉬광센(徐光宪)이 개발한 용매추출법이 있다. 이 기술은 희토류가 지닌 원소 17종을 고순도로 분리함으로써 100일 걸리던 공정을 일주일로 단축해 제련 단가를 크게 낮추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희토류 생산 기업들은 중국산 희토류와 경쟁할 수 없어 문을 닫아야 했는데 첨단 산업의 비타민이라 불리는 희토류는 석유와 같이 이처럼 무기화되었다.

중국의 희토류 대량 생산의 길을 연 베이징대 쉬광센 교수. 작년에 사망했는데 중국에서 국가최고기술상을 받은 유일한 과학자다. [중앙포토]

중국의 희토류 대량 생산의 길을 연 베이징대 쉬광센 교수. 작년에 사망했는데 중국에서 국가최고기술상을 받은 유일한 과학자다. [중앙포토]

제련 기술의 중요성은 이뿐이 아니다. 구리의 경우 제련 기술이 뛰어난 업체들은 광산과 계약한 회수율보다 더 많은 양의 구리를 뽑아내는데 이때 나온 초과분은 제련소의 이익으로 고스란히 돌아간다. 또 구리를 제련할 때 비록 소량이어도 금·은·백금 등도 함께 추출돼 나오는데 이 역시 제련소의 몫이다.

광물 공급망 구축에 골몰하는 미국
현재 미국은 자본과 기술을 가진 동맹 끼리 서로 힘을 합쳐 핵심 광물의 공급망을 자체적으로 구축하는 데 골몰한다. 인공지능 및 이와 연계된 로봇과 같은 첨단 기술로 인해 산업계가 격변하자 후진국은 이런 첨단 기술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어 자신들의 자원을 무기화하고 있어서다. 그래서 미국은 이에 대비하는 포석을 진행 중인데 이를 민간에게만 맡기면 전 세계 광물의 공급망을 장악한 중국이 덤핑 공세로 시장을 교란할 수 있어 이를 막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주도한다. 물론 이런 이유뿐만이 아니다. 현재 미국에서 배출되는 광업 기사는 매년 달랑 200명뿐이어서 미국 혼자만으론 이 구상을 성공시킬 수 없어서다.

미국 정부가 최근 우리나라의 아연 제련 기술에 주목해 고려아연과 함께 테네시주에 11조원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앞날을 두고 고민하는 우리 젊은이들도 제2의 연은분리법 기술자나 한국의 쉬광센 같은 사람이 되는 꿈을 꾸어야 하지 않을까? 기회는 화려한 곳에 있지 않고 오히려 험하다고 해 많은 사람이 기피하는 곳에 많을 수 있다. 또 광산업은 빠르게 스마트화해 더 이상 ‘3D 업종’도 아니다. 굴착 기계가 채광을 대신하고, 갱도에 이상 징후가 발생하면 컴퓨터 시스템이 미리 감지해서다. 그러니 정부와 시민단체도 환경보호라는 이름만으로 필요한 개발을 늦추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김정탁 노장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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