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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공모제 안 된다

중앙일보

2026.07.13 08:14 2026.07.1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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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

광주비엔날레가 창설 30년 만에 예술감독의 공개 모집을 선언했다. 국내의 고만고만한 비엔날레가 공모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광주비엔날레까지 ‘공모제 전성시대’에 편승한다는 것은 ‘사건’이다. 표면적으로는 공정성과 기회균등이라는 민주적 명분을 내세우지만, 문화예술계 안팎에서는 예술적 수월성의 퇴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예술의 본질은 공정성이나 기회의 균등보다는 시대정신에 기반한 치열한 전문성과 미학적 통찰에 있기 때문이다.

비엔날레가 추구하는 수월성
공모 감독으로는 달성 불가능
선임방식 졸속 변경도 큰 문제

비엔날레는 단순한 작품 나열이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 담론을 제시하는 지적 실험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적 네트워크와 확고한 미학적 가치관을 지닌 큐레이터가 전권을 쥐고 비엔날레의 모든 것을 이끌어야 한다. 하지만 공모제는 정량적 심사와 행정적 틀에 갇혀 파격과 실험 대신 평범하고 안전하고 무난한 기획만 양산할 위험이 매우 크다.

예술감독의 역할은 비엔날레의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작가를 발굴하고 작품을 유기적 서사로 엮어내는 큐레이팅이다. 공모제는 ‘공정’이라는 방패 막 뒤에 숨어, 정예 전문가를 초빙하는 일이 지니는 책임과 막중한 부담을 회피하는 방편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예술감독 선임을 위한 ‘심사’ 과정에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이가 ‘바지 예술감독’을 세워두고 ‘섭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예술은 기계적 평등으로 재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최고의 성취는 전문성과 책임, 독창성에서 비롯된다. 세계 최고의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여전히 예술감독 지명제를 고수하고 그렇게 선정한 예술감독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이유를 곱씹어야 한다. 비엔날레를 관통하는 일관된 미학적 통일성과 압도적 수월성은 공모제라는 행정적 절차로는 도달할 수 없다. 광주비엔날레가 글로벌 미술계의 변방으로 고립되지 않으려면, 공모제의 환상에서 벗어나 전문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책임 큐레이터 제도를 회복해야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선임 방식 변경 과정의 불투명성이다. 설립 초부터 국가적 성원과 국민적 지지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메가 비엔날레가 예술감독 선임 방식 변경이라는 중차대한 사안을 최소한의 공청회나 세미나조차 없이 밀실에서 졸속 처리한 것은 용인될 수 없다. 게다가 새로 출범하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특별시장을 선출하는 선거운동 기간에, 아직 새로운 특별시의 문화예술정책조차 마련 안 된 상황에서, 새로운 시정 책임자와 협의도 없이 서둘러 결정한 것은 매우 비정상적이며 그 의도를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세계적 위상을 내세우면서 의사결정은 여전히 지역의 폐쇄적 카르텔과 관료주의에 묶여 있는 현실은 심각한 모순이다.

비엔날레는 치열한 논쟁과 전문가들의 혜안이 모여야 압도적 성취로 이어진다. 이번 결정으로 되려 예술감독제를 폐지하고 차라리 참여 작가 모두를 공개 공모하라는 역설적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세계적인 기획자들이 지원을 기피할 것이라는 경고도 무시되었다. 리스크 분석과 대안적 모델에 대한 고민 없이 “공모로 무림의 고수를 모시겠다”는 발상은 삼류 무협지에도 나오지 않는 무책임의 극치다.

예술의 가치는 깊은 차원에서 인간 존재와 사회의 의미를 드러내는 힘을 지녔다는 점에서 나온다. 따라서 예술감독을 선정하는 일도 예술이, 비엔날레가 우리 인간과 사회에 어떤 의미를 남길 것이냐는 근본적인 관점 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예술을 예술답게 만드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광주비엔날레는 광주의 역사적 아픔을 세계적 담론으로 확장하며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무엇보다 더 5·18정신을 훼손하고 있다. 예술적 수월성을 버리는 변화는 비엔날레의 정체성을 위협한다. 재단이 문화예술계의 비판을 엄중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광주비엔날레는 ‘대한민국의 비엔날레’라는 타이틀을 스스로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공정성이 생명인 공모제를 도입하겠다는 당사자가 공모제에서 탈락한 뒤, 재시험이란 특혜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올랐던 사실이 오버랩되면서 공모제의 명분 자체를 흔들고 있는 점은 아이러니 그 자체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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