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고현곤 칼럼] 좌파 정부와 중도실용 정부의 갈림길

중앙일보

2026.07.13 08:20 2026.07.13 13:38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고현곤 주필

고현곤 주필

코로나 암흑기였던 2021~2022년. 경제는 엉망인데, 사상 최대의 초과 세수(稅收)가 발생했다. 본예산 대비 2021년 61조원, 2022년 52조원의 세금이 더 걷혔다. 문재인 정부가 법인세·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 증세를 밀어붙인 결과였다. 그 돈을 코로나 지원금으로 뿌렸다. 눈에 보이는 성과와 인기를 택한 것이다. 원칙 없이 풀린 돈은 어디에 쓰였는지도 모르게 눈 녹듯 사라졌다. 국민 손에 지원금을 쥐여주고, 선거를 치렀다. 미래에 대한 고민보다는 정치적 계산과 좌파 신념대로 국정을 운영했다. 후대를 위해 남긴 건 없었다.

반도체로 더 걷힌 세금, 미래에 투자
현금 살포 안 택한 건 놀라운 반전
탈원전 폐기, 4대강 활용 선언해야
좌파 도그마 깨고 진짜 실용 펼치길

이재명 대통령은 지원금에 관한 한 원조 격이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파격적인 지원금으로 화제를 몰고 다녔다. 경기도지사 때인 2020년 초 코로나 지원금을 중앙정부보다 먼저 풀었다. 국민에게 일정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기본소득의 전도사다. 지난해 대통령이 되자마자 전 국민 민생 지원금을 지급했다. 올해도 전 국민의 70%에게 고유가 지원금을 나눠줬다. 정부는 경제를 반전시킬 마중물이라고 선전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현금 살포로 인기를 유지하는 포퓰리즘, 문재인 정부 시즌2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가 내세운 실용주의와도 거리가 있었다.

답답한 상황에 구세주처럼 등장한 게 반도체 호황이다. 올해만 반도체 초과 세수가 50조~10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빈집에 소가 들어온 셈이다. 돈을 뿌리자는 주장이 다시 분출했다. 청와대에서 국민배당금 아이디어가 나왔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반도체는 공공재”라며 “초과이익을 재분배하는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자본주의를 흔드는 해괴하고도 위험한 발상이다. 파이를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나눠 먹을 궁리만 하는 전형적인 좌파 논리다.

그러던 정부가 최근 달라진 건 주목할 만하다. 반도체로 더 걷힌 세금으로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미래 세대를 위해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그 돈을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용수 마련에 쓰겠다”고 했다. 현금 살포로 흩뿌리지 않고, 미래 마중물로 쓰기로 한 것이다. 지원금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했던 이재명 정부의 놀라운 반전이다. 좀 더 봐야겠지만, 이념과 포퓰리즘에 물든 과거 좌파 정부와 다른 길이어서 다행이다. 그동안 하던 대로 지원금으로 뿌렸으면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을 뻔했다.

3대 메가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다들 생각부터 정비해야 한다. 지역 갈등을 부추기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수 진영에서 ‘왜 하필 호남에 반도체 공장을 짓느냐’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구애하는 거냐’는 문제 제기는 지나치게 음모적이다. 반대로 “반도체 투자는 호남에 대한 보상”이라는 이 대통령 발언도 너무 나간 얘기다. 정치색을 빼야 한다. 영호남을 따질 때가 아니다. 첨단 공장을 호남에도 짓고, 영남에도 짓고, 가능한 곳에 동시다발로 최대한 지어야 한다. 기업이 할 일을 왜 정부가 주도해 생색을 내느냐는 비판도 억지스럽다. 정부가 투자를 유치하는 건 전 세계 트렌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장을 지으려고 외국 정부는 물론 기업까지 콕 집어 윽박지른다.

4755조원 투자라는 현란한 수치를 앞세우기보다 중요한 게 있다. 정부가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려면 좌파 도그마부터 깨야 한다. 정부가 하기에 따라서는 전기·물·사람을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 3대 메가프로젝트에 원전 24기 이상의 전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현재 가동중인 원전 26기와 맞먹는 엄청난 규모다. 태양광·풍력 같은 신재생 에너지로는 어림없는 소리다. 김성환 기후환경부 장관은 “향후 전력 수요가 더 늘어난다면 신규 원전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서를 달아 마지못해 해주는 듯할 때가 아니다. 이 대통령이 직접 ‘원전을 최대한 빨리, 많이 짓겠다’고 선언하고, 탈원전을 공식 폐기하는 게 맞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원전이라고 자랑하면서 국내에 짓는 건 꺼리는 게 말이 되나.

물 부족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악으로 간주하는 좌파 시각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민주당 일각에선 지금도 4대강 보 해체를 주장한다. 정부가 4대강 보를 적극 활용하고, 댐도 더 짓겠다고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규제를 대폭 풀겠다면서 주 52시간제 완화를 외면하는 건 또 뭔가. 민주당이 반대한다는데, 차제에 민주당부터 바뀌어야 한다. 스스로 안 바뀌면 바꿔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문재인 정부에 빚진 게 없다. 좌파 정책을 계승할 이유가 없다. 핵심 참모 면면이 많이 다르다. 더는 비밀도 아니지만, 서로 가깝지 않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낡은 이념은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자”고 했다. 과거 좌파 정부의 오판을 과감히 인정하고, 바로잡는 거야말로 진정한 용기다. 이념에 파묻힌 좌파 정부로 남느냐, 먹고살 걸 만들어낸 중도실용 정부로 탈바꿈하느냐, 중요한 갈림길이다.





고현곤([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