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망상해변의 모래알은 희고 고왔다. 그 고운 입자들이 팔순을 훌쩍 넘긴 남자의 발가락 사이와 세월의 주름 사이에 하얗게 내려앉았다.
아내는 수건을 꺼내 그의 발치에 몸을 낮추었다. 서늘한 바닷바람이 뺨을 스치고, 손끝에는 평생을 묵묵히 걸어온 한 남자의 단단하고 거친 피부가 전해졌다.
평소 걷는 일조차 버거워하던 남편이었다. “바닷물에 발을 적시며 걸으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질 것”이라는 아내의 거듭된 권유에, 그는 못 이기는 척 신발을 벗고 차가운 동해 바다에 발을 담갔다. 그 한 걸음은 아내에게 커다란 선물이었다. 자신의 고집보다 아내의 걱정을 먼저 헤아려준 그 마음이 밀려오는 파도보다 깊게 다가왔다.
아내가 정성껏 모래를 털어내며 발을 닦아주고 있을 때였다. “어머, 혹시 불륜이세요?” 하며 농담조로 말을 건넸다. 희끗희끗한 머리의 여자가 남자의 발을 그토록 지극하게 보살피는 모습이, 이슥한 나이의 부부에게선 쉽게 보기 힘든 풍경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잠시 손을 멈추고 웃음을 터뜨렸다.
반세기가 넘는 56년의 세월을 함께 건너온 이들에게 ‘불륜’이라는 생경한 단어는 오히려 우리의 지나온 긴 시간을 환하게 비추어 주었다. 설렘보다는 연민이, 열정보다는 깊은 이해가 흐르는 노부부의 뒷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낯설 만큼 애틋해 보였으리라.
남편의 뒤꿈치에 박힌 돌덩이 같은 굳은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것은 저절로 생긴 흉터가 아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세상의 거친 바닥을 묵묵히 다져온 고단한 시간의 훈장이다. ‘참 오래도 걸어주었네요. 이 발로 우리를 지켜주고 여기까지 함께 와주어서 고마워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고백이 젖은 수건 속으로 소리 없이 스며든다.
이제 남편의 발을 닦는 일은 단순한 수발이 아니다. 함께 걸어온 굽이진 길들에 대한 작은 위로이자, 남은 길을 향한 조용한 축복이다. 해변을 떠나기 전, 아내는 다시 한번 남편의 발등을 말끔히 닦아주었다.
저물어가는 동해의 노을을 등지고 돌아서며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남은 여정은 모래바람 없는 평온한 길이기를, 그리고 오늘 닦아준 그 발이 내일은 조금 더 가벼워져 여전히 서로의 보폭을 맞추며 천천히 걸어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