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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로 세상 읽기] 이민자 하늘엔 세 개의 우주가 있다

Los Angeles

2026.07.13 18:25 2026.07.1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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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명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총장

이상명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총장

같은 하늘을 가리키는 세 단어가 있습니다. 스페이스(space), 유니버스(universe), 코스모스(cosmos). 스페이스가 ‘비어 있는 공간’이라면, 유니버스는 흩어진 존재들이 한 중심으로 이어진 ‘관계 맺는 공간’이며, 코스모스는 그 전체가 조화를 이룬 ‘의미 있게 정돈된 공간’입니다. 하늘은 하나이지만, 그 하늘을 사는 방식은 이렇게 셋입니다.
 
낯선 땅에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이민자라면 이 세 단어가 품은 서로 다른 영혼의 결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압니다. 현재 미국 인구의 약 15%가 이민자입니다. 이민은 소수의 감상이 아니라 미국 교회와 사회가 함께 마주한 삶의 자리입니다. 이 세 ‘우주’는 서로를 대체하는 단계가 아니라 한 이민자의 삶 속에 겹쳐 나타나는 세 겹의 차원으로, 때로는 순차적으로, 때로는 동시에 경험됩니다.
 
첫째 우주는 스페이스입니다.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의 막막함, 서툰 언어, 낯선 창구 앞에서 작아지던 마음, 병원과 관공서에서 설명하지 못한 채 돌아서던 침묵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창조는 비어 있음에서 시작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창 1:2). 바로 그 자리 위에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셨습니다. 마리아가 울고 서 있던 빈 무덤에서도 부활의 새 아침이 열렸습니다(요 20:11-18). 글자 사이에 스페이스가 있어야 문장이 읽히듯, 영혼에도 여백이 있어야 하나님의 숨결이 머뭅니다. 이 비어 있음은 폐기되어야 할 결핍이 아니라, 창조와 부활이 다시 시작되는 신비로운 출발선입니다.
 
둘째 우주는 유니버스입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17). 이민자의 삶은 홀로 버티는 생존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이름을 기억하고, 식탁을 나누고, 낯선 서류 앞에 함께 앉아 주고, 길을 몰라 헤매는 이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는 작은 환대가 고립의 섬을 공동체의 우주로 바꿉니다. “너희도 서로 받으라”(롬 15:7)는 말씀은 동족의 울타리를 넘어 이웃을 품으라는 부르심입니다. 환대는 마음씨 좋은 인사에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가 가진 공간과 사람과 시간을 이웃에게 내어 주고, 언어와 피부색이 다른 이들과 삶을 잇는 다리를 놓을 때, 환대는 누구나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일상의 구조가 됩니다.
 
셋째 우주는 코스모스, 카오스 속에 새겨지는 아름다운 질서입니다. 해고 통보, 체류 신분의 불안, 자녀와의 언어 단절에 더해, 강화된 이민 단속과 급변하는 정책이 한인 사회의 하루를 흔듭니다. 그럴수록 기도는 천장에 부딪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자투리 천이 조각보가 되듯, 흩어진 고통의 파편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질서를 이룹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는 말씀은 바로 이 신비를 가리킵니다. 제가 아는 한 이민 교회는 추방 위기의 교우들을 품은 작은 기도 모임이 이민법 상담과 지역 연대로 자라나, 흩어진 아픔들을 조각보 같은 공동체로 엮어냈습니다. 코스모스는 이렇게 이해하지 못한 파편들이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서로를 비추며 의미를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의 하늘은 지금 어느 우주입니까. 스페이스의 여백입니까, 유니버스로 건너가는 길목입니까, 코스모스의 가장자리입니까. 그 자리가 어디든, 하나님의 영은 오늘도 그 위를 운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보다 소망을, 고립보다 환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빈 곳은 채워지고, 흩어진 것은 이어지며, 뒤엉킨 것은 마침내 질서가 될 것입니다. 이민자의 하늘엔 그렇게 세 개의 우주가 함께 빛나고 있습니다.

이상명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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