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기자의 눈] 노키즈존이 늘어나는 사회

Los Angeles

2026.07.14 19:37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강한길 사회부 기자

강한길 사회부 기자

노키즈존은 아이를 싫어해서 생긴 걸까.
 
최근 미국에서도 어린이 출입을 제한하거나 부모의 책임을 강화하는 식당들이 등장하면서 이 질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누군가는 다른 손님을 배려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어린이를 배제하는 차별이라고 반발한다. 하지만 이 논란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식당들이 정말 문제 삼는 것은 아이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최근 북가주의 한 중식당은 “우리는 가족 친화적인 식당이지만 놀이터는 아니다”라는 공지와 함께 아이가 시설을 파손하면 부모에게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어 화제가 됐다. 업주는 아이들이 식당을 뛰어다녀도 제지하지 않는 부모가 적지 않아 직원들이 부모 대신 아이를 돌보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신용카드 단말기와 테이블, 식기 등이 파손돼 부모에게 비용을 청구한 사례도 있었다.
 
업주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식당은 아이를 돌보는 시설이 아니라 음식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뜨거운 음식을 나르는 직원과 뛰어다니는 아이가 부딪히면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기물이 파손되면 그 피해는 결국 업주의 몫이 된다. 무엇보다 다른 손님들은 시간과 돈을 들여 식당을 찾는다. 가족이나 친구와 편안한 식사를 즐기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통제되지 않는 아이의 행동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소중한 시간을 빼앗는 불편이 될 수 있다. 아이가 그랬다는 이유만으로 업주와 손님이 그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노키즈존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미국은 한국보다 가족 중심의 외식 문화가 훨씬 깊게 자리 잡은 사회다. 주말이면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식당을 찾는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식당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곳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쌓는 공간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인 업주들도 부모의 책임은 분명히 따져야 하지만, 어린이를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은 가족 고객을 잃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고민을 털어놓는다.
 
결국 이 논란의 본질은 ‘노키즈(No Kids)’가 아니라 ‘노매너(No Manner)’에 있다. 아이들은 원래 뛰고, 떠들고, 실수한다. 그것은 성장 과정의 일부다.  
 
문제는 그 행동을 방치하는 어른이다.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주는데도 모른 척하거나,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며 모든 불편을 주변이 감수해야 한다고 여기는 부모의 태도가 갈등을 키운다. 아이보다 먼저 돌아봐야 할 사람은 보호자인 셈이다.
 
동시에 아이들에게도 공공장소를 경험할 기회는 필요하다. 외식은 단순히 밥을 먹는 시간이 아니다. 차례를 기다리는 법, 큰 소리를 내지 않는 법,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는 사회화의 과정이다.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규칙은 책으로 배우기보다 직접 경험하면서 익히게 된다. 아이들이 이런 기회를 잃는다면 공공예절을 배울 기회 역시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에티켓 전문가들이 외식을 ‘사회성을 배우는 교육의 현장’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키즈존이 늘어나는 사회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업주에게 떠넘기는 사회 역시 건강하다고 보기 어렵다. 아이를 환영하는 사회와 아이에게 무엇이든 허용하는 사회는 분명히 다르다.
 
노키즈존 논란은 결국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가 아니라, 어른은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아이는 공공장소에서 사회를 배우게 되고, 그 사회를 가장 먼저 가르치는 사람은 식당 주인도, 다른 손님도 아니다. 결국 부모다.

강한길 / 사회부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