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홍명보 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달 29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과 관련, 축구협회가 이임생씨를 ‘기술총괄이사’로 선임하는 과정에서 정관 개정 절차를 거치지 않았던 점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후 이임생 전 이사가 전력강화위원장이 정식으로 사임하기 전부터 권한을 넘겨받아 회의를 주도했던 것으로도 파악됐다. 관련 수사를 경찰이 약 2년 만에 본격화한 가운데, 홍 전 감독이 최종 후보자로 추천된 경위와 이를 주도한 이 전 이사에게 정당성이 있었는지 등을 밝혀내는 것이 핵심이 될 전망이다.
15일 중앙일보가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스포츠윤리센터(윤리센터) 심의위원회 결정문’에는 홍 전 감독 선임 당시의 상황과 이 전 이사가 권한을 남용했다는 취지의 조사 결과가 상세히 담겨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윤리센터는 체육계 인권 침해와 비리를 조사하는 독립 기관이다. 이 결정문은 약 4개월에 걸친 분석을 기반으로 2024년 11월 8일 작성됐다. 본지가 결정문과 축구협회 입장문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정리해보니, 논란의 출발점엔 이임생 전 이사의 갑작스러운 ‘기술총괄이사’ 선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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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총괄이사직 신설’ 정관 개정 없었나
2024년 2월 16일, 아시안컵 성적 부진으로 인해 독일 출신의 클린스만 감독이 경질됐다. 4일 뒤 축협은 새로운 감독 선임을 위한 전력강화위(위원장 정해성)를 구성했다. 전력강화위는 전문가들이 감독 적임자를 골라내 이사회에 추천하는 기구다. 2월 21일부터 4월 30일까지 전력강화위는 총 6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축협은 “5월 20일 진행된 7차 회의부턴 ‘기술총괄이사’로 새로 선임된 이임생 이사도 참석했다”고 밝혔다.
이임생 전 기술총괄이사. 연합뉴스
하지만 윤리센터는 “기술총괄이사직 신설·선임은 축협이 정관 개정 절차 없이 진행”했던 것으로 판단했다. 협회 정관(제82조)에 따르면 정관 개정은 이사회 의결 등을 거쳐 대한체육회와의 협의를 거치고 주무관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당시 축협은 “정관 개정은 2025년에 총회를 열어 결의를 추인할 예정”이라며 “FIFA(국제축구연맹)의 Technical Director(기술총괄이사) 가이드라인에 권한 등이 이미 명시돼 있어서 이를 근거로 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윤리센터가 가이드라인을 분석해보니, ‘Technical Director’ 직책은 ‘청소년’ 대표팀의 코치를 선발하고 모니터링 하는 역할에 해당했다.
이와 별개로 이 전 이사의 회의 참석 시점도 논란거리다. 이 전 이사의 공식선임은 7차 회의(5월 20일) 이후인 5월 28일에 진행된 축협 제3차 이사회에서 결정됐다. 축협은 기술총괄이사직 신설에 대해 “한국축구 기술철학 정립이라는 목표를 속도감 있게 실행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종합하면 정관에 없는 직책을 축협으로부터 부여받기도 전부터 전략강화위 회의에 이 전 이사가 참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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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강화위 새로 구성’ 논의 없었나
전력강화위는 1~6차 회의 결과를 토대로 제시 마치 전 리즈 유나이티드 감독 등과 협상했지만 최종 결렬됐다. 이에 8차 회의(6월 3일)에선 “논의를 원점에서 다시 출발하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후 9~10차 회의를 통해 홍명보 전 감독을 포함해 3명으로 후보를 압축했다. 같은 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질의에선 “이 이사가 8차 회의부터 국내 감독 선임을 강조하는 발언을 했다”(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는 의혹도 제기됐다. 6월 25일 정해성 위원장은 홍 전 감독 외 2명의 외국인 감독 후보를 화상 면담한 후 축협 회장에게 보고했다. 회장은 “대면 면담까지 한 뒤에 최종 순위를 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답했고, 정 위원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6월 28일 사의를 표명했다.
정해성 전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 뉴스1
이후 6월 30일, 이임생 전 이사가 당시 전략강화위원들에게 화상 회의를 요청해 정 위원장 사의 표명에 따른 후속 방안을 논의했다. 일부 위원들은 불참한 채 진행됐다. 축협에 따르면 후속 방안은 ①전략강화위를 새로 구성하는 안 ②후속 절차를 이임생 이사가 이어받는 안 등 2가지였고, 위원들의 동의로 두 번째 방안을 채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윤리센터는 “당시 회의 영상 녹음자료를 살펴본 결과, 전략강화위를 새로 구성하는 1번 안건에 대해선 논의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또한 정 위원장이 사임서를 제출한 날짜는 7월 16일이고 사임 일은 8월 1일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축협이 적용하고 있는 대한체육회 규정에 따르면 위원장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경우에는 부위원장 중 연장자순으로 직무를 대행해야 한다. 쉽게 말해 위원장의 공식 사임 전, 위원이 아닌 자가 위원장의 권한을 넘겨받은 것이다.
2024년 6월 30일에 진행된 후속 방안 논의 결과가 담긴 축구협회 입장문. 축구협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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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빵집 면접’ 참관인·질문지 없었나
이 전 이사는 정 위원장이 마무리하지 못했던 면담을 위해 유럽으로 건너가 7월 3~4일 홍명보 외 감독 후보 2명을 대면했다. 축협 변호사와 기술본부장도 함께했다. 준비된 17가지의 질문을 하고 후보들의 답변을 기반으로 결과지도 만들었다. 하지만 문체부 감사결과에 따르면 “7월 5일 밤 11시에 진행된 홍명보 감독 면접에선 참관인도 동행하지 않았고, 질문지도 없었다”고 한다. 면접 장소는 홍 전 감독의 지인이 운영하는 경기 성남시 소재의 빵집이었다.
윤리센터도 “이 전 이사가 3명의 후보자를 면접한 결과를 충분히 비교 검토하지 않고, 면접 말미에 홍 전 감독에게 감독직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며 “스스로의 판단 기준으로 면접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앞선 후속 절차 회의에서 위원들이 동의한 것은 ‘이 이사가 순위를 정해서 위원회에 보고’하는 것에 그치는데, 혼자 최종 추천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이 전 이사의 부탁을 받은 홍 전 감독은 7월 6일 감독직을 수락했고, 축협은 7월 8일 감독 선임을 공식 발표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의 모습. 곽주영 기자
이와 관련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당시 전력강화위원이었던 박주호 전 축구선수 등을 불러 지난 9·14일 참고인 조사를 진행했다. 경찰은 이 전 이사가 어떻게 감독 선임을 주도하게 됐는지를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전망이다. 법조계에선 “만약 정식 절차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홍 전 감독은 제안받은 입장이기 때문에 처벌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신동욱 의원은 “감독 선임과정에서의 국민적 의구심이 많은 만큼,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