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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고민하다 다탠리 샀다”…원조와 유사품의 ‘기막힌 공생’ [비크닉]

중앙일보

2026.07.15 14:00 2026.07.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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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서울 홍대의 한 다이소 매장. 텀블러 판매대 한쪽이 텅 비어 있었다. 5000원짜리 ‘대용량 핸들 텀블러’가 놓였던 자리다. 직원에게 재입고 시점을 묻는 손님들 사이로 “품절이래”라는 말이 오갔다.

동난 제품은 손잡이가 달린 대용량 디자인과 뚜껑 형태 등이 6만9000원짜리 스탠리 텀블러를 닮아 ‘다탠리’(다이소+스탠리)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가격은 5000원으로, 스탠리 대표 제품의 10분의 1 수준이다.

6만9000원짜리 스탠리 텀블러를 닮아 ‘다탠리’(다이소+스탠리)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는 5000원짜리 ‘대용량 핸들 텀블러’가 품절 대란을 빚고 있다. 사진 다이소몰 캡처

6만9000원짜리 스탠리 텀블러를 닮아 ‘다탠리’(다이소+스탠리)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는 5000원짜리 ‘대용량 핸들 텀블러’가 품절 대란을 빚고 있다. 사진 다이소몰 캡처


다탠리는 이른바 ‘듀프(Dupe)’ 소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듀프’는 영어 ‘듀플리케이트(Duplicate)’에서 나온 표현으로, 고가 브랜드 제품의 디자인·색감·향 등을 닮았지만, 가격은 훨씬 낮은 대체 상품을 뜻한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로고를 그대로 모방하는 '짝퉁'과 구분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고물가 시대, 달라진 소비의 셈법
최근 이런 듀프 소비는 텀블러에만 국한되지 않고 화장품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하고 있다. 다이소 손앤박의 아티 스프레드 컬러밤은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샤넬 립밤 듀프’로 입소문을 탔고, 에이딕트와 협업한 향수는 ‘바이레도 저렴이’ ‘조말론 저렴이’ 등으로 불리며 화제를 모았다. 다이소 뷰티 부문 매출은 올해 1~5월 전년 동기 대비 약 30% 증가했다.

패션 업계에서도 듀프 소비는 자주 관측된다. 에르메스 버킨백을 닮은 젤리 소재 ‘퍼킨(Firkin)백’은 10~20대를 중심으로 화제를 모았다. 퍼킨백은 ‘가짜(Fake) 버킨백’을 뜻하는 ‘Fake Birkin Bag’을 줄인 표현이다. 미국에서 월마트가 선보인 ‘워킨(Wirkin)백’도 같은 맥락이다.
다이소 손앤박의 아티 스프레드 컬러밤은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샤넬 립밤 듀프’로 입소문을 탔다. 사진 이지영 기자

다이소 손앤박의 아티 스프레드 컬러밤은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샤넬 립밤 듀프’로 입소문을 탔다. 사진 이지영 기자

듀프 소비 확산의 배경에는 고물가 흐름이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과거에는 비슷한 제품을 사는 것이 ‘갖고 싶은 유명 브랜드를 대신하는 선택’으로 여겨졌다. 지금은 ‘굳이 더 비싼 걸 살 이유를 못 찾겠다’는 판단으로 받아들여진다. ‘얼마를 썼는가’보다 ‘얼마나 잘 골랐는가’가 소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됐다.

이제 소비자는 브랜드가 제시하는 가치보다 자신이 직접 비교해 얻은 결론을 더 신뢰한다. 과거에는 비싼 제품을 샀다는 사실 자체를 과시했다면, 지금은 같은 만족을 얼마나 합리적인 가격에 얻었는지를 자랑한다. 듀프는 단순히 저렴한 제품을 사는 현상이 아니라, 같은 만족을 더 합리적인 가격에 얻고 그 선택을 스스로 공유하는 소비 방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고가 브랜드와 비교해도 만족도가 높다고 평가받는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며 “가격만 보고 구매하기보다 직접 경험하고 비교한 뒤 선택하는 소비가 늘면서 다이소 같은 채널의 뷰티 경쟁력도 함께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타 브랜드 명성 이용, ‘듀프’ 자처한다
‘다탠리’도, ‘샤넬 립밤 듀프’도, ‘퍼킨백’도 이름 자체가 성립하려면 먼저 비교 대상이 되는 브랜드가 존재해야 한다. 아무도 무명 브랜드의 듀프는 찾지 않기 때문다. 듀프라는 말이 붙는 순간 소비자는 비슷한 유명 브랜드를 한 번 더 떠올린다. 듀프라는 이름 자체가 유명 브랜드를 전제로 한다는 얘기다.
샤넬의 립 앤 치크 밤(왼쪽)과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손앤박 아티 스프레드 컬러 밤. 사진 샤넬, 다이소 홈페이지 캡처

샤넬의 립 앤 치크 밤(왼쪽)과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손앤박 아티 스프레드 컬러 밤. 사진 샤넬, 다이소 홈페이지 캡처

이 과정에서 신규 브랜드는 듀프라는 수식어로 해당 카테고리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의 명성을 활용할 수 있다. 이런 마케팅 기법은 지난 2010년대 초 화장품 업계서 자주 사용하던 ‘미투(Me too) 전략’과 닮아있다.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로더의 갈색병 에센스를 겨냥해 보라병 에센스를 낸 미샤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미투 전략과 듀프의 차이점은 명확하다. 미투는 브랜드가 의도를 가지고 소비자에게 직접 가치를 설명했다면 듀프는 소비자가 스스로 제품을 비교하고 평가해 비슷한 제품을 발굴한다. SNS 후기와 비교 콘텐트, 실제 사용 경험으로 이뤄진 진정성 있는 반응이라는 점에서 광고보다 먼저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이에 브랜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부는 원료와 생산 과정, 제조 파트너, 연구개발(R&D) 투자 등을 공개하며 신뢰를 높이고, 일부는 세컨드 브랜드를 선보이거나 저가 채널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직접 흡수한다. 일례로 아모레퍼시픽은 마몽드의 세컨드 브랜드 ‘미모 바이 마몽드’를, LG생활건강은 CNP의 세컨드 브랜드 ‘바이 오디-티디’를 각각 다이소 전용으로 출시했다. 또 유니클로는 크리스토퍼 르메르와 협업한 ‘유니클로 U’로 이른바 ‘르메르맛 유니클로’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듀프’와 ‘짝퉁’ 사이
경계는 여전히 예민한 문제다. 로고를 그대로 베끼거나 디자인을 과도하게 차용한 제품은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20년 국내에서는 에르메스 버킨백 디자인에 눈 장식을 붙여 판매한 이른바 ‘눈알 가방’ 업체들이 대법원에서 부정경쟁방지법상 ‘성과물 도용’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받았다. 상표권 침해는 인정되지 않았지만, 디자인을 통해 타인의 성과를 무단 이용한 행위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판단됐다. 듀프와 짝퉁(모조품) 사이, 어디까지를 ‘참고’로 볼 것인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지난해 6월 방송인 최화정은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왕년에 잘 쓰던 오렌지색의 젤리 퍼킨백을 소개했다. 사진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 최화정이에요’ 영상 캡처

지난해 6월 방송인 최화정은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왕년에 잘 쓰던 오렌지색의 젤리 퍼킨백을 소개했다. 사진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 최화정이에요’ 영상 캡처


다만 법적 논란과는 별개로 듀프 소비를 브랜드에 대한 위협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명 브랜드일수록 듀프의 비교 대상이 되고, 그 과정에서 브랜드의 상징성과 존재감이 오히려 다시 소비되기 때문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듀프는 유명 브랜드와 대체 상품이 서로 관심을 끌어주는 ‘윈윈’ 구조로 볼 수 있다”며 “유명한 브랜드일수록 듀프가 만들어지고 SNS에서 추천과 비교 콘텐트가 확산하면서 기업이 직접 홍보하지 않아도 브랜드가 지속해서 언급되고 인지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듀프를 표방하는 것 자체가 오리지널 제품이 그만큼 모방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브랜딩 측면에서는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b.이슈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이슈를 건져 올립니다.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하고, 시대와 호흡해 성장하는 브랜드와 기업을 조명합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이지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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