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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닐<합성 마약>로 잃은 아들, 다큐로 다시 만나다

Los Angeles

2026.07.15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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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 (Remake)
반세기 자전적 작업 마침표 찍은 로스 맥엘위
세상을 떠난 아들과 다시 마주하는 기록 여정
7월 17일 램리 로열 극장에서 국내 첫 개봉
영화는 슬픔과 유머 사이를 오간다. 그렇다고 그 슬픔이 가볍게 다뤄지는 것은 아니다. 분노와 회한,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물음들이 뒤엉킨 채 그대로 남겨진다. 감독은 이를 애써 봉합하려 들지 않는다. [Music Box Films]

영화는 슬픔과 유머 사이를 오간다. 그렇다고 그 슬픔이 가볍게 다뤄지는 것은 아니다. 분노와 회한,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물음들이 뒤엉킨 채 그대로 남겨진다. 감독은 이를 애써 봉합하려 들지 않는다. [Music Box Films]

다큐멘터리임에도 그 어떤 극영화보다 극적이다. 카메라 앞에 선 것은 각본 없는 삶이었으나, 자신과 가족을 있는 그대로 필름에 담는 순간 그것은 이미 한 편의 드라마가 되어 있다. 극적인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응시한 지극히 사적인 기록이 마침내 스스로의 이야기가 되어 흐른다.
 
로스 맥엘위(Ross McElwee)는 지난 반세기 가까이 자신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온 감독이다. 1986년작 ‘셔먼 장군의 행진(Sherman’s March)’은 남북전쟁 당시 셔먼 장군의 남부 진군로를 다루려던 애초의 기획이 여자친구와의 이별을 계기로 방향을 틀며, 자신의 연애사와 남부 여성들과의 만남을 다루는 사적이고도 유쾌한 여정으로 바뀐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훗날 마이클 무어를 비롯한 여러 감독에게 영향을 준 1인칭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대중적으로 각인시켰다. 그로부터 사십 년, ‘타임 인디피니트(Time Indefinite)’, ‘브라이트 리브스(Bright Leaves)’, ‘포토그래픽 메모리(Photographic Memory)’ 등을 거치며 자신의 삶을 필름에 새겨 온 맥엘위가 1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 바로 ‘리메이크(Remake)’다.
 
홀로 카메라를 들고 피사체와 거리를 좁혀 온 필름메이커 맥엘위는 늘 관찰자이자 동시에 관찰 대상이라는 이중의 위치를 자처해 왔다. ‘리메이크’에 이르러 그 이중성은 극단에 도달한다.
 
‘리메이크’는 맥엘위의 필모그래피 전체를 다시 보게 만드는 영화다. 그의 여러 영화에 등장했던 아들 아드리안의 어린 시절 모습들은 이제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Music Box Films]

‘리메이크’는 맥엘위의 필모그래피 전체를 다시 보게 만드는 영화다. 그의 여러 영화에 등장했던 아들 아드리안의 어린 시절 모습들은 이제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Music Box Films]

영화는 다소 뜻밖의 지점에서 출발한다. 한 할리우드 프로듀서가 ‘셔먼 장군의 행진’을 극영화로 만들겠다며 판권을 사들이고, 스무 살 청년이 된 아들 아드리안 맥엘위(Adrian McElwee)는 이 소식에 들뜬다. 평생 예술영화의 영역에서만 인정받아 온 아버지가 더 넓은 대중과 만날 기회라고 여긴다. 아버지에게는 그저 하나의 제안일 뿐이었던 일이, 아들에게는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규정할 만큼 중요한 사건으로 자리 잡는다. 상업적 성공보다 진정성을 중요시하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잔잔한 긴장감이 들어선다.
 
각색 작업이 지연되면서 아드리안은 서서히 약물 중독에 빠져든다. 맥엘위는 평소처럼 카메라를 든 채 아들의 삶을 기록하며, 프레임 안에 담긴 것과 프레임 밖에서 실제로 벌어지던 일 사이의 간극을 힘 있게 짚어낸다. 평생 자부해 온 기록자로서의 태도가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자문에 빠지지만, 영화의 톤은 결코 감상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냉정할 정도로 담담하다.
 
결국 아드리안은 2016년 크리스마스이브,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펜타닐(Fentanyl)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후 영화는 아들이 아이폰에 남긴 방대한 영상 기록과 아버지가 16㎜ 필름으로 평생 쌓아 온 기록들을 대비해 보여 준다. 두 사람 모두 카메라를 든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이 영화를 단순한 애도의 기록을 넘어 이미지와 기억이라는 주제에 대한 성찰로 확장시킨다.
 
아들이 남긴 미완성 다큐멘터리 속 마약 중독자들과의 대화 장면은, 아들 역시 아버지 못지않게 타인의 삶을 카메라로 들여다보던 사람이었음을 일깨워 준다. 부자가 같은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어 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는 순간, 영화는 가장 아프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국면에 들어선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샬린 스완지(Charleen Swansea)를 다시 찾아가는 장면이다. ‘셔먼 장군의 행진’에서 강렬한 존재감으로 기억되는 그녀는 이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어, 두 사람이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이 만남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시간과 상실이라는 주제를 가장 응축된 형태로 보여 준다. 기록은 남지만 기록 속 사람의 기억은 사라질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감당하기 힘든 슬픔으로 다가온다.
 
제목 ‘리메이크’에는 이중의 의미가 담겨 있다. 표면적으로는 ‘셔먼 장군의 행진’을 극영화로 다시 만들려다 끝내 무산된 리메이크를 가리킨다. 그러나 상실 이후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고 자신의 삶과 아들과의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고 재구성하려는 감독 자신의 행위, 그것이야말로 맥엘위가 말하고자 하는 ‘리메이크’의 실체다.
 
그는 더 이상 연애나 남부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카메라를 든 행위 자체가 아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관찰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관찰자가 자신의 관찰 행위를 질문하는 이 구조는 1인칭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도달할 수 있는 정점에 오른다.
 
완성되지 못한 극영화 프로젝트는 결국 배경으로 물러나고, 그 자리는 아버지가 아들을 뒤늦게 이해하려는 몸짓으로 채워진다. 하나의 표면적 소재로 출발했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적인 영역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형식은 맥엘위의 다큐멘터리가 늘 취해 온 태도였다. 다만 이번에는 그 끝에 아들의 죽음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이 자리한다는 점이 전작들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2025년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서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 부문 골든글로브 임팩트상을 수상했으며, 트루/폴스(True/False) 영화제와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에서도 상영됐다. 국내에서는 4K로 복원된 ‘셔먼 장군의 행진(Sherman’s March)’과 함께 다음 주 나란히 극장 개봉에 들어간다. 사십 년 전과 지금의 맥엘위를 같은 스크린 위에서 마주하게 되는 보기 드문 순간이다.
 
‘리메이크’는 맥엘위가 반세기 가까이 쌓아 온 자전적 다큐멘터리 세계의 사실상 마지막 장이라 할 만하다. 영화는 샬린과 아드리안 두 사람에게 헌정되어 있는데, 두 헌사가 나란히 놓이는 순간 이 영화가 다루는 상실이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감독의 삶 전체를 관통해 온 흐름이었음이 드러난다.
 
영화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다큐멘터리라는 형식 자체를 향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카메라는 무엇을 붙잡을 수 있고, 무엇을 끝내 놓칠 수밖에 없는가. 그 물음에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답을 찾아가는 그 과정 자체가 이 영화를 오래도록 기억될 작품으로 완성시킨다.
 
로스 맥엘위 감독은 불가피한 자기모순을 숨기지 않는다. 그 정직함이야말로 다큐멘터리라는 형식 자체에 대한 하나의 증언이다. [Music Box Films]

로스 맥엘위 감독은 불가피한 자기모순을 숨기지 않는다. 그 정직함이야말로 다큐멘터리라는 형식 자체에 대한 하나의 증언이다. [Music Box Films]

결국 ‘리메이크’가 남기는 것은 위안이 아니라 질문이다. 기록하는 행위가 사랑의 한 형태일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그 사랑이 때로는 이해로 이어지지 못한 채 이미지로만 남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맥엘위는 이 불가피한 자기모순을 숨기지 않는다. 그 정직함이야말로 다큐멘터리라는 형식 자체에 대한 하나의 증언이다.
 
램리 로열(Laemmle Royal) 극장에서 7월 17일 개봉한다.

김정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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