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룬 차브라(오른쪽에서 두 번째) 앤트로픽 국가안보 총괄이 15일 애스펀 안보포럼 패널 세션에 참여하고 있다. 김경준 기자
애스펀 안보포럼의 핵심 화두는 미·중 경쟁 속에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의 역할이었다.
특히 한국은 안보뿐 아니라 반도체와 조선 등 미국 제조업의 공급망을 뒷받침할 핵심 파트너로 집중 거론됐다.
생성형 인공지능(AI) 플랫폼 ‘클로드’ 개발사인 앤트로픽의 타룬 차브라 국가안보 총괄은 15일 포럼에서 미·중 AI 경쟁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미국이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첨단 AI 반도체와 제조 장비에 대한 수출 통제가 필수적”이라며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국가”라고 강조했다.
차브라는 미국의 최첨단 AI 모델이 중국보다 6~9개월 앞서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중국이 미국 AI 모델의 핵심 성능을 추출하는 ‘적대적 증류’를 통해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이 기술적 패권을 유지하려면 결국 한국.대만.일본.네덜란드 등 반도체 공급망을 가진 핵심 우방국과 적극적인 공조를 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주중 미국대사를 지낸 니컬러스 번스 전 대사는 “한국.일본.인도는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미국의 매우 중요한 협력국들”이라며 “이들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압박한다면 미국과 뜻을 함께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방국을 약화시키면서 중국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미국 조선업 재건을 다룬 대담에서도 한국의 중요성이 거듭 부각됐다. 지난 4월까지 해군장관을 지내며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존 펠런 전 장관은 “한화의 경우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인수해 매우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다”며 한국의 기여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재임 시절 “한화가 미국 내 사업 영역을 넓히고 한국의 우수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이전할 수 있도록 추가 사업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는 비화도 공개했다.
그는 특히 한국 조선업의 독보적 경쟁력의 원천으로 자동화 기술과 숙련된 전문인력을 꼽았다.
그는 “한국 조선소들은 로봇공학을 비롯한 최첨단 기술을 적극 도입했다”며 “여기에 한 지역에서 5대에 걸쳐 조선업에 종사하며 축적해 온 경험 역시 엄청난 강점”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어 “한국에서는 용접공이 버튼 하나만 누르면 필요한 부품이 작업 현장으로 배달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반면, 미국 조선소는 작업자가 부품을 수급하기 위해 먼 거리를 일일이 이동해야 하는 1960년대식 관행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미국 조선업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 기업의 대대적인 투자와 기술 이전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을 진단하는 자리에서는 관계의 건전성을 두고 엇갈린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2월까지 네덜란드 외교장관을 지낸 다비드 반 베일 법무장관은 네덜란드의 대외정책이 미국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네덜란드는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으며, 중국 견제에도 한층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벨렌 마르티네즈 카르보넬 유럽연합(EU) 대외관계청 사무총장은 현재의 대서양 동맹 관계를 우려스럽게 진단했다.
그는 “최근 조사에 따르면 유럽인의 75%가 미국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을 향한 부정적 시선보다 더 강한 수치”라고 지적했다.
카르보넬은 유럽이 국방을 포함한 다방면에서 독자적인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주문하며, “개방경제를 지향하되 미국이나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에서 탈피해 협력 파트너를 다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