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 한다. 무엇보다도 혈압이 올라서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적 주제를 다루더라도 내 개인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려 애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공산주의는 암(癌)과 같다. 빨리 잘라내야 한다. 미국은 결코 공산주의 국가가 되지 않을 것이다”는 연설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미국 독립 250주년을 기념하는 경사스러운 자리에서, 그것도 이틀 연이어 목소리 높여 외치니,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공산주의 체제는 미국 체제의 정반대이며, 공산주의 체제는 제대로 작동한 적이 없다. 우리의 전사들은 전 세계에서 공산주의와 싸웠다.”
“우리 땅에서 이제 공산주의자의 위협이 부상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승리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이길 수 없다”
과연 이것이 지금 미국 대통령이 할 말인가? 이런 말을 거침없이 해도 되는 건가? 국민 통합을 외쳐도 모자랄 판에 이처럼 국민을 갈라치기 하는 위험한 발언을 함부로 할 수 있는가? 그것도 최고의 정치 지도자가….
반공을 국시로 삼는 분단국가에서 태어나 자라고 교육받은 우리 세대는 ‘공산주의’라는 낱말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념 분쟁, 극단적 대립, 드디어는 동족끼리의 전쟁으로 이어진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부러워해 왔는데, 이 나라에 공산주의자의 위협이 부상하고 있다고?
1950년대 초 미국사회를 휩쓴 매카시즘의 광풍이 떠오른다. 매카시즘은 정당한 절차와 자유를 부정한 미국의 대표적 흑역사로 꼽힌다. 또 어떤 이는 중국의 ‘문화혁명’을 떠올리기도 한다. 두렵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공산주의 발언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공산주의는 9·11 테러 이후 최대 위협”이라는 등의 발언이 이어져 왔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대통령이 한마디 하면, 공화당 정치인과 보수 인플루언서들이 뒤를 이어 요란하게 떠들어대며 유권자를 갈라치는 현상이 되풀이되는 점이다. 올 상반기 이들의 ‘공산주의(자)’ 언급은 지난해보다 43% 늘었다고 한다.
그래서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미국을 배회하고 있다”는 표현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민주당 진영이다. “민주당은 무신론자 공산주의자들”이라고 공격한다. 특히 최근 민주당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는 민주사회주의를 공산주의와 동일시하며 이념 프레임을 부각하고 있다.
언론들은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국정 지지율의 하락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11월 중간선거를 공화당 대 민주당의 대결보다는 ‘미국의 전통적 가치 대 공산주의’의 이념 대결 구도로 몰아가, 자신을 미국의 전통적 가치 수호자로 내세워서, 공화당 지지층은 물론 중도 유권자까지 흡수하려는 선거 전략이라고 풀이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문화계에서도 이념 공세의 수위를 끌어올리며, 역사 서술의 수정을 시도하고 있어 주목된다. 구체적인 예로,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스미소니언 재단의 전시, 학술 활동이 진보 진영에 치우쳐 있다며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그리고, 스미소니언 재단과 산하기관의 역사 전시 방식을 재검토하라는 대통령 행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박물관이 활동가들에 의해 이념적으로 장악돼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 조치인 것이다. 이는 미국의 역사, 문화기관이 급진 좌파에게 잠식됐다는 인식을 부각해, 보수 지지층의 위기의식을 자극하고 결집을 꾀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불똥이 어디로, 어디까지 튈지 예측하기 어렵다. 자기편이 아닌 사람은 모두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울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선거의 승리가 다급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국민을 갈라치고 나라를 쪼개는 일은 정치지도자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 아닐까? 너무 낭만적인 생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