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박모(59·경기도 고양시)씨도 ‘7월의 신부’였다. 1994년 7월. 올해 못지않은 찜통더위였다. 2026년 7월. 딸 김서인(가명)씨도 7월의 신부가 된다.
“우리 땐 집 장만이라도 좀 더 수월했지만….” “엄마, 우리도 다 뜻이 있거든.”
‘7월의 신부’가 늘고 있다. 중앙SUNDAY가 국가데이터처 30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0년대 들어 7월 혼인 비율이 가팔라지고 있다. ‘오뉴월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우리 속담이 무색할 정도로 하객을 불러들인다. ‘가능한 한 적게’와 ‘가능한 한 빨리’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경제’를 거론한다. 딸의 ‘우리도 다 뜻이 있다’라는 말 속에 그 뜻이 녹아 있다.
“솔직히 말해도 되겠습니까.”
지난 11일 결혼한 또 다른 7월의 신부 박새미(30·서울 영등포구)씨. “6월과 7월 결혼 비용이 800만원이나 차이 나는데, 7월의 체감 37도 폭염은 몸으로 버티고 그 돈으로 신혼여행이나 주식 투자에 보태려고 한다”고 했다.
지난 4일 식을 올린 윤모(34·서울 강서구)씨 부부도 “결혼식장 비수기인 7월인 데다가 당일이 악귀가 없어 길일이라는 ‘손 없는 날(음력 날짜 9와 0으로 끝나는 날)’이라 주머니도, 마음도 모두 가벼웠다”며 웃었다.
지난해 7월 결혼 커플은 2만394쌍. 한해 전체(24만326쌍)의 8.5%다. 100명 중 9명이 ‘7월의 신부’란 얘기다. 2000년 6명 수준(6.2%)에서 37% 늘었다. 혼인 신고 43만4911건으로 연간 최다치를 기록한 1996년에도 7월에는 7.1%에 그쳤다. ‘7월의 신부’ 비율은 이후에도 6~7%를 오가다가 2020년대 들어 8%대에 진입했다. 한 웨딩플래너는 “올해는 체감상 지난해를 10% 정도는 웃도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20여년간 현장을 지켜본 주윤식 결혼 전문지 웨딩H 대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우선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의 자녀들인 2차 에코붐 세대(1991~1996년생)가 결혼 적령기에 들었다는 것. 하지만 이는 물리적 환경이 조성됐을 뿐 행동을 유발하는 심리적 환경은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서인씨도, 박새미씨도 2차 에코붐 세대. 그들은 “7월에 결혼하는 사람 대부분은 저희와 같은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주 대표는 “최근 결혼 풍속도는 ‘가능한 한 적게 그리고 빨리’로 그려지는데, 이른바 ‘결혼 양극화’ 때문”이라며 그 ‘이유’를 분석했다.
한국소비자원이 조사한 지난 6월 전국 평균 결혼 서비스 비용은 2159만원. 1년 새 2074만원에서 85만원(4.1%)이 늘었다. 서울 강남은 3336만원으로, 전국 평균 대비 1200만원, 강북 지역 대비 500만원 가까이 많다. 양극화다. 비용 중 식대가 60%인데, 1인 식사비가 9만원대에 진입했다. 그래서 요즘엔 ‘10만원 축의금만 내고 식장엔 안 가는 게 예의’라는 말도 나온다.
“올리면 올렸지, 절대 안 떨어져요. 비수기인 7, 8월이지만 할인 폭도 기간도 좁아졌어요.”
한 결혼업체 관계자의 말. 결혼 비용은 하방경직성이 강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7월의 신부’들은 한여름이라도 ‘가능한 한 적게’ 지금 치르는 게 낫다는 생각”이란 게 그의 해석이다. 어떻게든 비용을 아끼려고 셀프 웨딩 스냅 촬영을 진행하는 커플도 늘어나고 있다. 식장 대여 등 필수 영역은 고급화, 촬영 등 대체 가능한 영역은 저가화되는 또 다른 양극화 현상도 벌어지는 것이다.
결혼식장(대관·장식·식대) 비용은 이미 지난 5월 1740만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7~8월은 20% 떨어진 1300만~1400만원 사이에서 계약이 이뤄졌다. 업체에 따라 30%까지 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내년 7~8월엔 올해 여름보다 높은 금액이다.
김씨는 29세. 지난해 기준 여성 초혼 연령 31.6세보다 ‘한참’ 어리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25~29세 여성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는 44.3건. 1년 새 4건 늘었다. 같은 연령대 남성 혼인도 25건으로 2.2건 증가했다. ‘가능한 한 빨리’의 현주소다. 김씨는 이미 지난 4월에 혼인신고를 마쳤다. 무늬만 ‘7월의 신부’지, 실제론 ‘4월의 신부’였던 셈.
그의 앞에는 신혼부부 전용 디딤돌 대출, 신생아 특례 대출 등 초저금리 정책 금융 상품과 신혼부부·생애최초 특별공급, 부부 중복 청약 등이 놓이게 됐다. 각종 공과금 등 따로 내던 생활비를 하나로 합칠 수도 있게 됐다. 엄마에게 ‘다 뜻이 있거든’이라고 말한 이유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인륜지대사라는 결혼도 생산과 소비, 최소 비용의 최대 행복이라는 경제 논리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공존하면서 ‘적게, 빨리’ 혼인하는 움직임이 커진 것 같다”며 “다만, 좋은 일자리가 없거나 소득이 낮아 결혼을 통한 자산 형성은 물론, 결혼 자체도 꿈꾸지 못하는 청년들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결혼 양극화’는 결혼 시장 안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먹고 살려고.” 김씨의 모친은 32년 전 ‘7월의 신부’가 된 이유를 말했다. 그나마 경제적 자립이 가능했던 마지막 세대로 평가받는 2차 베이비부머다. 절박한 그들의 자녀들도 ‘먹고 살려고’ 결혼 풍속도를 바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