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암살자(The Assassin)’란 별명을 얻은 공매도 투자자 파미 콰디르(35)가 새로운 투자 무대로 한국을 선택했다. 다만 이번엔 기업가치를 높여 수익을 내는 행동주의 투자자로 새출발한다. 글로벌 시장을 움직이는 ‘큰 손’의 시선이 한국을 향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시간) 콰디르가 자신이 창업한 공매도 전문 헤지펀드 사프켓센티넬을 접고 한국에서 행동주의 투자자로 변신한다고 보도했다. 주가 하락을 예상해 주식을 공매도(주식을 빌려 먼저 판 뒤, 나중에 더 낮은 가격에 다시 사서 갚는 투자 방식)하는 ‘숏(short)’ 전략에 매진해 온 그가, 처음으로 오를 종목을 매수하는 ‘롱(long)’ 전략을 펼칠 무대로 한국을 지목했다.
콰디르는 기업의 부정부패와 회계부정, 사기 등 약점을 파헤쳐 집요하게 공격하는 투자자다. 글로벌 제약사 발리언트, 독일 핀테크 와이어카드를 공매도해 큰 수익을 냈다. 이 일화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검은 돈(Dirty Money)’으로도 소개됐다. HBO 드라마 ‘인더스트리’ 속 여성 공매도 투자자의 실제 모델로도 거론된다.
WSJ에 따르면 콰디르는 서울 사무소를 설립해 현지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한국 증시에서 숨은 보석(hidden gems)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오전 2시부터 한국 기업을 분석할 정도로 공을 들인다. 콰디르가 한국을 선택한 건 반도체 등 인공지능(AI) 기술 경쟁력보다 주식 시장이 저평가됐다고 판단해서다.
그는 WSJ에 “나의 경력은 잘못된 거버넌스(지배구조)로 실패한 기업을 찾는 데 집중돼 있었다”며 “거버넌스를 개선할 수 있는 기업이라면 어떨까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코스피 상장사의 3분의 2 이상이 장부가치 이하로 거래되고 있다”며 “공매도에 활용한 분석 능력을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자사주 소각, 이사회 독립성 강화 등 기업가치 제고에 활용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이 한국 진출에 최적의 시기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증시에서 일명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밸류 업(기업 가치 상승) 프로그램’을 시작한 측면에 주목했다. 그는 “초기 투자 목표는 중소기업”이라며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 기업의 자사주 매입 및 소각 촉진과 같은 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테슬라 등 혁신 기업에 투자해 ‘돈나무 언니’로 유명한 캐시 우드(71) 아크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도 지난달 17일 한국을 방문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산업의 ‘심장과 영혼(heart and soul)’”이라며 “글로벌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AI 혁명의 핵심 수혜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드에 이어 콰디르까지 한국에 주목하는 건 한국 증시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반도체 경기 사이클에 따라 움직이는 제조업 중심 시장으로 평가받았다면, 최근에는 AI 인프라 확산과 기업가치 개선이 동시에 이뤄지는 시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