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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촌 아들 찾아도 공주는 안돼”…日 ‘황실전범’ 성차별 후폭풍

중앙일보

2026.07.19 00:44 2026.07.19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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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31일 도쿄 메이지진구구장에서 열린 와세다대와 게이오대의 야구 경기에 참석한 나루히토 일왕과 외동딸 아이코 공주. 오누키 도모코 기자

지난 5월31일 도쿄 메이지진구구장에서 열린 와세다대와 게이오대의 야구 경기에 참석한 나루히토 일왕과 외동딸 아이코 공주. 오누키 도모코 기자

일왕의 외동딸을 두고 36촌에서 후계자를 찾는다?

일본에서 ‘황실전범(皇室典範)’ 개정안을 둘러싼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구 궁가(舊 宮家)의 남성을 왕실의 양자로 입양하고, 여성·여계 일왕 가능성을 차단한 데 대한 비판이 쏟아지면서다.

일본에서 17일 참의원을 통과한 개정안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왕족 여성이 일반인과 결혼한 뒤에도 신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고, 1947년 왕실에서 이탈한 11개 구 궁가의 남성을 왕실의 양자로 맞이해 그 아들부터는 왕위 계승권을 갖도록 했다.

이번 개정의 배경에는 왕족 수 감소에 대한 위기감이 있었다. 여성 왕족은 결혼과 동시에 왕실을 떠나야 해 왕족 수는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또, 나루히토(德仁) 일왕에겐 아들이 없어, 사실상 계승이 가능한 후계자는 일왕의 조카이자 후미히토(文仁) 친왕의 아들 히사히토(悠仁·20) 친왕 뿐이다.

만약 히사히토 친왕이 아들을 얻지 못하면 대가 끊길 수 있다는 우려가 이번 개정 논의의 출발점이 됐다.

하지만 정부 개정안에 양자의 아들에겐 왕위 계승 자격을 부여하면서 공주(여성)는 물론 공주의 아들(여계)까지도 왕위에 오르는 걸 금지하는 내용이 담기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결혼한 공주는 왕족 신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지만, 기혼 왕족 여성 본인만 해당하며 배우자나 자녀는 왕족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외동딸 아이코(愛子) 공주나 조카 가코(佳子) 공주는 물론, 그녀들이 낳은 아들도 왕위를 이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약 600년 전 무로마치 막부 시대에 갈라진 구 궁가 출신 남성의 아들에게는 일왕이 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나루히토 일왕과 구 궁가 남성들의 혈연관계는 36~38촌 정도라고 한다.

개정 직후 일본 주요 신문들은 일제히 비판적인 사설과 기사를 내놨다.
가코 공주(왼쪽)와 히사히토 친왕이 지난 1월 2일 도쿄 고쿄(皇居)에서 열린 일본 왕실의 신년 일반참하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가코 공주(왼쪽)와 히사히토 친왕이 지난 1월 2일 도쿄 고쿄(皇居)에서 열린 일본 왕실의 신년 일반참하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18일자 1면에서 개정안이 충분한 협의 없이 처리됐다며 “왕실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를 충분한 합의 없이 수적 우위로 처리한 것은 정치의 질적 저하를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요미우리신문도 같은날 사설에서 “전후 80년에 걸쳐 형성돼 온 국민과 일왕 사이의 유대를 무위로 돌릴 수도 있는, 지나치게 많은 결함을 안은 난폭한 제도 변경”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구 궁가 출신 양자 제도는 백지화하고, 여성·여계 천황을 배제하지 않는 왕위 계승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에서도 우회적인 비판이 나왔다.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정례브리핑에서 지지통신 기자가 이번 개정안에 대해 성평등 관점에서 사무총장의 견해를 묻자, 파르한 하크 유엔 사무총장 부대변인은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여성이 삶과 직업 등 모든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포용적인 정책을 채택해달라고 모든 국가에 촉구하고 있다”고 답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24년에도 여성차별철폐협약의 취지에 어긋난다며 여왕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라고 일본에 권고한 적이 있다.

한편 일본 여론조사에서는 여왕에 대한 선호도가 뚜렷한 가운데, 양자 입양에 대해선 엇갈리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이 5월 실시한 조사에서 여성 일왕에 대한 찬성은 72%로 나타났다. 반면 구 궁가 남성 양자안에 대해 마이니치의 6월 20~21일 조사에서는 반대(32%)가 찬성(28%)을 앞섰다. 결국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여왕 도입’ 논의는 빠진 채, 찬반이 엇갈리는 구 궁가 양자안만 국회를 통과한 셈이 됐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7월 15일 도쿄 국회에서 열린 중·참의원 국가기본정책위원회 합동심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7월 15일 도쿄 국회에서 열린 중·참의원 국가기본정책위원회 합동심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일본 정치권 역시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 자민당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총리는 17일 마이니치신문 인터뷰에서 구 궁가 양자안에 대해 “왕실에서 자라고 그에 맞는 교육을 받지 않으면 (왕족에 걸맞는) 인품과 태도를 갖추기 어렵다”는 취지로 우려를 나타냈다.

이번 개정을 주도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에 대해서도 국민적 합의가 중요한 사안에 자신의 보수적 왕실관을 앞세웠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2010년대부터 이미 남계·남성에 의한 계승을 중시해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17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도 “38촌보다 직계(1촌)가 헌법의 세습 원칙에 맞지 않느냐”는 야당 측 지적에도 “메이지 시대에도 32촌 떨어진 남계 남성이 왕실의 양자가 된 전례가 있다”며 주장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한편, 마이니치가 18~1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 내각의 지지율은 6월보다 10%포인트 하락한 41%를 기록해 지난해 10월 출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9%포인트 오른 44%였다. 지난해 10월 다카이치 내각 출범 이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더 높게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성운([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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