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부상을 극복하고 한국 여자 1500m 기록을 34년 만에 갈아치운 육상 중·장거리 간판 박나연. 타이머에 찍힌 자신의 신기록을 가리키며 활짝 웃고 있다. [사진 대한육상연맹]
한국 여자 1500m 기록이 34년 만에 깨졌다. 주인공은 박나연(28·원주시청)이다. 중학생 때 입은 부상으로 오래 고전하다, 20대 중반에 재기에 성공했다.
박나연은 지난 18일 일본 시베쓰에서 열린 2026 호쿠렌 디스턴스챌린지 여자 1500m에서 4분13초87로 우승했다. 1992년 이미경이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세운 한국 기록(4분14초18)을 0.31초 앞당겼다.
박나연은 포항 대흥중 3학년 때 참가한 소년체전 8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이튿날 열린 1500m에서 왼쪽 무릎 인대 파열을 당했다. 육상 선수에겐 치명적인 부상이다.
굴하지 않았다. 고교 입학 후 재활에 매진해 2학년 때 다시 트랙에 섰다. 이듬해 전국체전 여고부 1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부활을 알렸다. 그대로 성장한다면 임춘애 이후 명맥이 끊긴 800m·1500m 전문 선수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7년 실업팀 입단 후 부상 후유증이 다시 엄습했다. 2020년 이후엔 4년의 긴 슬럼프가 이어졌다. 반전은 지난해 일어났다. 한 해 동안 여자 1500m 일반부 기록을 네 차례나 경신했다.
유영훈 육상 중·장거리 국가대표팀 감독은 “부상 후유증으로 겨울만 되면 무릎이 아파 제대로 된 훈련을 못 했다. 그런데 2024년 말부터 통증이 사라졌다”고 했다.
중·고교 시절 800m를 주력으로 삼은 박나연은 힘이 좋고 지구력도 남다르다. 단점은 부상 후유증에 대한 두려움이다. 유 감독은 “몸이 안 좋다고 느낄 때 두려워한다”고 했다.
이번 대회도 박나연은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뛰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한국 기록을 세운 뒤엔 “더 자신 있게 했으면 기록을 더 단축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오히려 후회했다고 유 감독은 전했다.
일본에서 돌아온 박나연은 곧바로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담금질에 들어간다. 목표는 메달권. 유 감독에 따르면 박나연의 시즌 기록은 6위권이다.
1500m 아시아 기록은 3분50초46(취윈샤), 세계 기록은 3분48초68(페이스 키피에곤)이다. 박나연의 이번 기록과는 20초 넘게 차이가 난다. 격차만 보면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새 기록은커녕 있던 기록마저 아깝게 뒷걸음질치는 종목이 수두룩한 게 지금 한국 육상의 현실이다. 그 흐름 속에서 34년 묵은 벽을 허문 박나연의 의지는, 세계·아시아와의 격차와는 별개로 그 자체로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