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공작원이었다가 북파공작원이 된 인물. 평범한 회사원으로 숨어 살다가 딸을 구하기 위해 인간병기의 본능을 되살린 남자. 드라마 ‘김부장’은 마치 가상의 세계의 히어로를 그린 듯하다. 그러나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에서 ‘김부장’은 현대사에 있었고 지금도 살아 숨쉬는 실존 인물들의 조합이기도 하다.
정구왕 예비역 중령은 1998년 3월 13일 대한민국 대북 공작 역사에서 초유의 일로 기록된 ‘CKW사건’의 주인공이다. 그의 이름 이니셜을 딴 CKW사건은 북·중 접경지역 단둥(丹東)에서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블랙 요원으로 활동 중이던 정구왕이 북한의 공작요원들에 의해 평양으로 납치됐다가 살아 돌아온 사건이다.
그는 더중앙플러스에 25년 동안 가슴에 담아온 비밀을 공개했다. 그의 이야기는 더중앙플러스 시리즈
‘남북 스파이 전쟁 탐구’ 시리즈(www.joongang.co.kr/plus/series/230)에서 볼 수 있다.
북한에 납치됐다가 구사일생으로 생환한 정구왕 전 정보사 중령이 서울 숭례문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채 당시의 사건을 회상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전대미문의 납치극은 1998년 3월 13일 금요일 오후 10시쯤 중국 랴오닝성 단둥 시내 위안바오(元寶)구 마이커(麥克)소구 2동 502호에서 시작됐다. 정구왕이 숙소 겸 사무실로 쓰던 주상복합아파트였다. 정구왕은 1년 반 전 ‘고려인삼세영산업 단둥지사장’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정보사 소속 블랙 요원으로 밀파됐다. 북·중 접경지에서 대북 정보 수집과 공작 수행이 임무였다.
그날 정구왕은 장세영(당시 30세)이란 중국 동포와 함께 있었다. 장세영은 96년 10월부터 공작원(Agent)으로 포섭하기 위해 공을 들이던 휴민트(인간정보)였다.
" 형님, 그만 가볼게요. "
장세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연 순간이었다. 문밖에 대기하던 5~6명의 괴한이 납입했다. 권총과 몽둥이를 든 괴한들과 난투극이 벌어졌다. 공수여단 등에서 특수훈련으로 단련된 정구왕이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권총 손잡이로 머리통을 가격당하고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이튿날 새벽녘, 정신이 들어 눈을 떴다. 시골 흙집 벽과 서까래에 하얀 회칠을 한 벽이 보였다. 액자에 담긴 사진 두 장이 걸려 있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얼굴이었다.
두 손에는 수갑이 채워졌고, 두 무릎은 끈에 묶였다. 핏자국이 낭자한 머리와 얼굴은 수건으로 칭칭 감겨 있었다. 괴한 중 한 명이 웃으며 “너 안기부 끄나풀이지”라고 물었다. “아니다”고 답했다. 더는 대화가 없었다.
1998년 3월 북한 괴한들을 정구왕의 자택으로 이끈 장세영. 정구왕은 한국으로 돌아와 그를 잊지 않기 위해 그의 사진 뒤에 신상 정보와 '와신상담' '나를 죽였으니 이제 니놈 차례다'라는 글을 적었다. 사진 정구왕 제공
괴한들은 정구왕을 토요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트렁크에 눕혀 태웠다. 비포장도로를 5~6시간쯤 달렸다. 어디선가 주민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북한말이었다. 차 밖으로 ‘박천’이라고 쓴 한글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북한 땅이라니…. 꿈인지 생시인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SUV는 중국 단둥에서 직선으로 110㎞ 떨어진 평안북도 박천군을 거쳐 한참을 더 달리더니 평양 외곽에 도착했다. 수용소 같은 시설에 감금됐다.
매서운 눈을 가진 북한 보위부 산하 반탐(反探·대간첩 업무) 요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취조에 나섰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자기들끼리 ‘과장’ ‘부장’이라고 불렀다.
" 이름은? "
" 정병준. "
" 허튼수작 말고, 똑바로 말하라! "
그들은 정구왕의 정체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정구왕의 숙소에서 탈취해 온 그의 수첩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인적 사항과 업무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정구왕은 억류가 장기화하자 북한을 탈출할 궁리를 짜냈다. 피랍 당시 스스로 숨을 끊어야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북한은 그를 처형하지도 전향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는 북한 반탐 조직에 제안했다.
" 나를 남한으로 돌려보내 주라. 당신들을 위해서 일하겠다. 나도 장군으로 승진도 하고 성공하고 싶다. 당신들이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라. "
이중스파이. 국군정보사 소속 대북공작관 정구왕 중령은 운명의 기로에 섰다. 1998년 3월 13일 중국 단둥(丹東)에서 신분을 숨긴 채 흑색(비밀) 첩보요원으로 활동하다 북한에 납치된 정구왕은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북한을 살아서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했지만 24시간 철저히 감시당하는 처지에서 암담했다.
그렇다고 조국과 가족을 등진 반역자가 되어 북한에 눌러앉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중스파이로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가짜 변절을 제안하고, 북한이 이를 덥석 물면 가능한 절박한 도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