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인천 물류센터 화재가 사흘 넘게 이어지면서 진압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반복되는 대형 물류센터 화재를 계기로 고밀도·자동화 창고에 맞는 화재 예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0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불길은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며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건물(연면적 29만9000㎡) 붕괴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주민 대피와 현장 통제 범위도 확대됐다. 여러 상황과 안전상의 이유로 소방대원의 내부 진입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인천시 서해구 석남동 쿠팡 물류센터 화재 발생 사흘째인 20일 소방당국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날 새벽부터 비가 내렸지만 진화에는 큰 도움이 도움이 되지 못했다. 비는 건물 외벽의 열을 낮추고, 인근으로의 화재 확산을 억제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만, 적재물 깊숙이 번진 내부 화재를 진압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과 전문가들은 진화를 어렵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대량의 가연성 적재물 ▶복잡한 내부 구조 ▶높은 내부 온도와 붕괴 위험 등을 꼽는다.
불이 시작된 6층은 높은 철제 선반(랙)을 3단으로 설치한 창고로, 종이상자와 비닐 포장재 등으로 포장된 상품이 수십만 개 적재돼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많은 가연물은 불을 키우는 일종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가연물이 잔뜩 쌓여 있다 보니 적재물 내부까지 열과 불씨가 침투해 겉불을 꺼도 다시 살아나는 ‘심부화재(深部火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 경우 가연물을 하나씩 들춰내며 불을 꺼야 하는데, 소방대원의 안전 등을 고려하면 자유롭게 내부에 진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가연물이 밀집된 공간은 외부 공기가 유입되면 남아 있던 불씨가 다시 살아나 불길이 커질 수 있다. 실제 소방당국은 화재로 외벽과 구조물이 훼손되면서 외부 공기가 내부로 유입돼 잔불이 되살아나고 불길이 확산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300도에 육박하는 내부 온도 역시 소방대원의 진입을 제한하는 요인이다.
해당 물류센터는 층고가 높은 한 층 안에 철제 선반을 여러 단으로 설치한 ‘메자닌(mezzanine·복층) 구조’다. 공간 활용도는 높지만 내부 동선이 복잡하고 적재물이 층층이 쌓여 화재 발생 시 진압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옥 기자
인천시 서해구 석남동 쿠팡 물류센터 화재 발생 사흘째인 20일 소방당국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김경록 기자
현행법에 따라 이 같은 창고엔 3m마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하는데, 소방당국은 이번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적재물이 높게 쌓여 분사된 물이 화점까지 충분히 도달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물류회사 임원들과 물류센터의 메자닌 구조에 대한 긴급회의를 진행했다.
또 다른 변수는 리튬배터리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해당 물류센터 5층엔 리튬배터리가 탑재된 물류 운반 로봇 수백 대가 있어 불길 확산 차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동화 설비가 늘어날수록 새로운 화재 위험에 대비한 안전 기준도 함께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물 붕괴 위험도 여전하다. 해당 물류센터는 금속 패널을 여러 겹으로 구성한 샌드위치 패널 구조로, 고열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구조물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전날 물류센터 인근 약 116m 반경의 상가와 사무실 등에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다.
소방당국은 굴삭기 2대를 동원해 건물 일부를 철거하며 내부 연기를 빼내고 소화 용수를 투입하는 방식으로 진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대형 물류센터 화재가 장기화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2021년 6월 발생한 쿠팡 이천 덕평센터 화재는 연면적 약 12만7000㎡ 규모 건물이 전소되며 엿새 만에 진압됐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이랜드패션 천안 물류센터 화재 역시 의류와 신발 약 1100만 점이 불에 타 약 60시간 만에 완진됐다.
20일 사흘째 화재가 이어지고 있는 인천 서해구 석남동 쿠팡 물류센터에 진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국토교통부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에 등록된 전국 물류창고는 6000개에 육박한다. 소방 설비와 안전관리 기준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영국 등 해외에선 가연물(상품)의 화재 위험도에 따른 등급을 기준으로 방화구획을 나눠 상품을 관리한다. 함승희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국내 물류센터는 다양한 상품을 한 공간에 섞어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연물의 화재 위험도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방화구획을 나눠 맞춤형으로 스프링클러와 방화벽을 설계·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하성 교수는 “자동화 설비와 리튬배터리 사용이 늘어난 만큼 소방시설과 배터리 충전 공간 등에 대한 관리 기준도 현실에 맞게 지속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며 “반복되는 물류센터 화재를 계기로 변화한 물류 환경에 맞는 안전기준과 제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