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덱의 왼팔에는 푸른 눈을 가진 사자 문신이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사진 삼성 라이온즈]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에 ‘푸른 눈의 사자’가 등장했다. 새 외국인 투수 크리스 페덱(30)이다. 지난 13일 삼성에 합류한 그의 왼팔에는 푸른 눈을 가진 사자 문신이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이 정도면 애초에 ‘파란’ 유니폼을 입는 ‘사자’ 군단에서 뛰게 될 운명이 아니었나 싶다.
선수 자신도 놀라워했다. 페덱은 “무척 멋진(cool) 우연의 일치”라며 “사자는 내 영혼의 동물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야수다. 사자 하면 용맹하고 두려움 없고 끈질긴 태도, ‘정글의 왕’이라는 수식어가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내 눈동자가 파란색이라 사자의 눈에도 푸른색을 넣어 포인트를 줬다”며 “그런데 삼성의 팀 이름이 라이온즈고, 팀 컬러가 파란색이더라. 이 또한 멋진 우연의 일치”라며 뿌듯해했다.
삼성은 부상 대체 선수 잭 오러클린과의 계약이 끝난 뒤 오른손 투수 페덱을 영입했다. 키가 1m96㎝에 달하는 페덱은 올 시즌에도 메이저리그(MLB) 13경기(선발 9경기) 마운드에 오른 실력파다. 외국인 선수 대부분이 불펜으로 뛰다 한국에 오는데, 페덱은 빅리그 통산 132경기 중 119경기에 선발 투수로 나서 32승을 올렸다. 그가 지난 15일 첫 불펜피칭을 하자 삼성 투수들이 주변에 잔뜩 모여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지켜봤을 정도다.
현역 빅리거 출신인 삼성 새 외국인 투수 크리스 페덱은 KBO 데뷔전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역투해 ‘우승 청부사’로 기대를 모았다. [사진 삼성 라이온즈]
페덱이 입단하자마자 유독 눈길을 사로잡은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대구는 한여름 삼복더위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는 야구장에 긴 팔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했다. 재킷과 팬츠는 물론이고, 베스트까지 한 세트인 스리피스 수트였다. 특히 눈에 띈 소품은 커다란 카우보이 모자. 텍사스에서 나고 자란 그가 고향의 상징인 카우보이 문화를 일상 패션으로 활용한 거다. 그는 미국에서 뛸 때도 선발 등판 날이면 격식 있는 수트나 잘 다려진 셔츠를 입고 야구장에 나왔다는 후문이다. 심지어 신발마저 카우보이 부츠를 신곤 해서, 당시 별명도 ‘카우보이’였다.
격식 있는 옷차림은 페덱에게 행운의 부적과도 같다. 그는 “집에서 나오기 전, 거울에 나 자신을 비춰본다. 그 모습이 멋지면 야구장에 올 때 더 큰 자신감이 붙는다”며 “어릴 때부터 중요한 장소에 갈 때는 멋지게 입고 가야 한다고 배웠다. 야구장이 내게 그런 곳”이라고 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룩(look) 굿’이 ‘필(feel) 굿’을 거쳐 ‘플레이(play) 굿’으로 이어질 거라는 자기 암시다. 페덱은 삼성과 계약할 때도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입단 기념사진을 찍었다.
실력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그저 기행으로 여겨졌을 텐데, 페덱은 마운드에서 곧바로 진가를 보여줬다. KBO리그 데뷔전이었던 지난 18일 대구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6이닝 1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해 첫 승을 따냈다. 최고 시속 152㎞ 직구에 컷패스트볼, 체인지업, 커브, 투심패스트볼 등을 현란하게 섞어 던지면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팀 분위기와 흐름에 잘 따르고, 한국 야구만의 독특한 응원 문화를 정말 즐거워한다”며 페덱의 적응력을 높이 샀다.
삼성이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건 2014년이 마지막이다. 2015년엔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에 져 준우승했다. 올해 12년 만의 통합 왕좌에 도전하는 삼성은 야심 차게 영입한 ‘우승 청부사’ 페덱과 함께 순조로운 후반기 스타트를 끊었다. 페덱도 그 누구보다 우승 열망이 크다. 일본 프로야구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한국행을 택한 그는 “삼성이 우승 경쟁 중인 팀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