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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 최고의 계약서, 한 접시가 되다…식탁 위에 오른 ‘베니스의 상인’ [쿠킹]

중앙일보

2026.07.2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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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는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계약서가 등장한다. 친구 바사니오를 위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린 안토니오가 빚을 갚지 못하면 자신의 살 1파운드를 내어주겠다는 내용을 담은 계약서다. 만약 이 운명의 계약을 한 접시의 요리로 표현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연극 '베니스의 상인' 속 샤일록과 안토니아의 계약서를 이유석 셰프가 음식으로 표현한 폴포 카르파초. 사진 SB성보

연극 '베니스의 상인' 속 샤일록과 안토니아의 계약서를 이유석 셰프가 음식으로 표현한 폴포 카르파초. 사진 SB성보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내 팜 투 테이블 레스토랑 '센트럴 윤잇'의 이유석 총괄셰프는 검은 먹물과 문어로 그 상상을 현실로 옮겼다. 오징어 먹물로 계약서의 검은 잉크를 표현하고, 부드럽게 익힌 문어를 얇게 썰어 그 위에 올렸다. 계약 이행을 집요하게 요구한 샤일록의 성격을 쉽게 떨어지지 않는 문어의 빨판에 빗댄 것이다.

이 셰프는 공연을 음식으로 옮길 때 단순히 등장인물의 이름을 메뉴에 붙이지 않았다. 작품 속 인물의 성격과 관계, 주요 장면을 골라 식재료의 색과 질감, 맛으로 풀어낸다. 무대 위 서사를 한 접시 안에서 다시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내 센트럴 윤잇이 연극 '베니스의 상인'을 모티브로 한 스페셜 다이닝 메뉴를 선보인다. 사진 SB성보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내 센트럴 윤잇이 연극 '베니스의 상인'을 모티브로 한 스페셜 다이닝 메뉴를 선보인다. 사진 SB성보

식사의 시작을 여는 '운하 위의 이탈리안 치케티 트리오'는 베네치아의 이미지를 테이블 위로 옮겼다. 그린 올리브와 대구살 스프레드, 부라타 치즈와 파프리카 절임을 각각 작은 한입거리로 구성했다. 초록색과 흰색, 붉은색의 조합은 이탈리아 국기를 연상시키고, 길거리에서 가볍게 즐기는 베네치아 전통 음식 치케티는 관객을 작품의 배경인 베네치아로 자연스럽게 이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샤일록의 계약에서 시작된다. '샤일록의 검은 계약, 폴포 카르파초'는 이유석 셰프의 작업 방식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메뉴다. 그릇에 검은 먹물 소스를 바르고 그 위에 문어를 펼쳐 놓은 뒤 펜넬과 케이퍼, 피클 채소, 허브를 올렸다. 이유석 셰프는 "오징어 먹물로 계약서의 검은 글씨와 샤일록의 검은 속내를 표현했고, 문어의 빨판은 그의 탐욕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자유롭게 흩뿌린 채소와 허브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빈틈없는 구성으로 극의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분위기는 포셔가 머무는 벨몬트로 넘어가며 달라진다. 이유석 셰프는 베네치아에서 벌어지는 계약과 갈등의 장면과 달리, 벨몬트를 풍요롭고 온화한 공간으로 해석했다. '벨몬트의 푸른 언덕, 완두콩 리조 파스타'는 완두콩과 시금치를 활용해 초록빛을 살렸다. 한입 맛보면 완두콩의 은은한 단맛이 먼저 퍼지고, 부드러운 리조 파스타와 쫄깃한 구운 갑오징어가 어우러져 기분 좋은 식감을 선사한다.

바사니오의 청혼은 황금빛 사프란으로 표현했다. '바사니오의 황금빛 청혼, 사프란 링귀니'에는 과거 베네치아 무역을 통해 거래되던 고급 향신료 사프란과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보타르가, 바지락을 사용했다. 사프란의 향긋함에 보타르가와 바지락의 짭조름한 감칠맛이 더해져 앞선 메뉴보다 한층 화려하고 선명한 맛을 낸다. 사랑을 얻기 위해 베네치아로 향한 바사니오의 욕망과 당시 도시의 부를 한 그릇에 담아냈다.

바사니오와 포셔의 사랑을 표현한 디저트. 사진 SB성보

바사니오와 포셔의 사랑을 표현한 디저트. 사진 SB성보

디저트는 바사니오와 포셔의 사랑을 표현했다. '포셔와 바사니오의 사랑, 애플 부케 타르트'는 얇게 썬 사과를 겹겹이 말아 꽃처럼 구워냈다. 바삭한 타르트 셸과 캐러멜라이즈된 사과, 젤라토가 어우러진 달콤한 맛으로 갈등과 재판을 지나 사랑으로 마무리되는 작품의 결말을 표현했다.

한편, 센트럴 윤잇은 공연과 미식을 연결하는 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앞서, 창극 '리어', 연극 '맥베스', 연극 '붉은 낙엽', 연극 '렛미인', 뮤지컬 '보이스 오브 햄릿', 연극 '반야 아재' 등 국립극장 주요 공연과 연계한 스페셜 메뉴를 선보이며, 작품의 서사를 음식으로 풀어내며 공연의 여운을 식탁까지 확장했다. 이번에 연계한 연극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의 대표 희극을 바탕으로 사랑과 거래, 법과 자비, 복수와 선택의 충돌을 다룬 작품으로, 배우 신구, 박근형, 이승주, 카이, 최수영, 원진아, 이상윤 등이 출연한다.

센트럴 윤잇이 진행한 공연과 미식을 연결한 협업들. 사진 왼쪽부터 리어, 맥베스, 햄릿. 윤잇. 사진 SB성보

센트럴 윤잇이 진행한 공연과 미식을 연결한 협업들. 사진 왼쪽부터 리어, 맥베스, 햄릿. 윤잇. 사진 SB성보

센트럴 윤잇을 총괄하는 손경남 윤잇F&B 본부장은 "공연과 미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작품과 연계한 메뉴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며 "앞으로도 공연의 감동을 식탁까지 이어갈 수 있는 다양한 협업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베니스의 상인'과 연계한 스페셜 메뉴는 공연이 열리는 8월 9일까지 판매한다. 단품 또는 코스로 즐길 수 있으며, 공연 티켓을 제시하면 10% 할인해준다.

송정 기자 [email protected]


송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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