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란이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후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요즘 골프계에서 “드라이버는 쇼, 퍼트는 돈”이라는 골프 격언은 잘 쓰지 않는다. 이 말은 편견에 가깝다는 게 데이터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 노스플로리다대 스포츠데이터분석연구소 최완용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상금과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 부문은 아이언(상관계수 0.445)이었다. 퍼트는 0.214에 그쳤다.
다른 통계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현대 골프에서 돈을 많이 버는 선수는 사실 뛰어난 아이언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런데 디 오픈만큼은 다르다.
20일 끝난 디 오픈 챔피언십 우승자 라이언 폭스는 대회 퍼트 부문 1위였다. 폭스만이 아니다. 최근 5년간 디 오픈 우승자 중 4명이 참가 선수 전체를 통틀어 타수 이득(SG) 퍼팅 부문 1위였다. 퍼트를 잘하는 선수가 우승하는 대회가 바로 디 오픈이다.
데이터골프에 따르면 2021~2025년 디 오픈 우승자들은 대회 나흘간 평균 9타 가까이를 그린 위에서 벌었다. 투어 전체를 보면 아이언이 이기는 게임인데, 디 오픈에서는 퍼트가 이기는 게임이 되는 셈이다.
지난해 디 오픈이 열린 링크스 코스인 로열 포트러시. 성호준 기자
왜 그럴까. 답은 바닷가의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에 조성된 링크스 코스의 특성에 있다.
일반적인 미국 투어 코스는 공중전이다. 부드러운 그린을 향해 높은 탄도로 볼을 띄워 핀 옆에 정확히 꽂아 넣는, 일종의 다트 게임에 가깝다. 반면 링크스는 다르다. 바람에 맞서 볼을 낮게 치고, 그린과 그린 주위에서 ‘굴리는 게임’이다. 이 차이가 퍼트의 가치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링크스는 바람이 세고 예측이 불가능하다. 공이 공중에 오래 머무는 티샷과 아이언샷은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드라이버와 아이언을 잘 치는 선수라도 결과는 들쭉날쭉해진다. 롱게임이 바람이라는 ‘노이즈’에 뒤덮이면, 선수 간 실력 차이가 스코어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링크스 그린은 상대적으로 커서 퍼트 비중 자체가 높다. 게다가 땅이 딱딱해 아이언샷을 그린이 아니라 그린 앞을 겨냥해 굴려 올리는 전략을 쓴다. 그린 굴곡도 심하기 때문에 홀 옆에 붙이기가 쉽지 않고, 아무래도 남는 첫 퍼트 거리가 길어진다. 롱퍼트 거리 조절 능력이 결정적인 경쟁력이 된다.
그린은 지면에 붙어 있어 바람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다른 모든 게 바람에 흔들리는 조건에서, 퍼트는 오히려 ‘통제 가능한 변수’로 남는다. 다른 분야보다 퍼트 실력 차이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다른 링크스 대회도 마찬가지다. PGA 투어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 2021년 우승자 이민우는 퍼트 평균 3위, 준우승자 피츠패트릭은 퍼트로 얻은 타수 1위였다. 2023년 로리 매킬로이는 아이언 순위는 33위에 그쳤지만 퍼트 이득 5위로 우승했다. 지난 해 우승자 크리스 고터럽도 퍼팅 평균 2위였다. 베트페어의 골프 프리뷰는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을 두고 “링크스 대회답게, 여기선 통계적으로 퍼트가 절대적으로 핵심이었다”고 평가했다.
유해란은 넬리 코다와 함께 LPGA 투어 최고의 드라이버, 아이언 플레이어다. 두 선수는 올 시즌 나란히 메이저 2승씩을 기록했다. AP=연합뉴스.
AIG 여자 오픈(여자 브리티시 오픈)도 다르지 않다. 2023년 우승자 릴리아 부에 대해 LPGA는 “볼 스트라이킹은 엄청났지만, 그를 우승 경쟁자에서 챔피언으로 밀어 올린 건 퍼트였다”고 평가했다. 마지막 두 라운드에서만 그린 위에서 7.66타를 벌었다. 지난해 우승자는 LPGA 투어 퍼트 이득 순위 1위인 야마시타 미유였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바람과 딱딱하고 경사가 심한 그린이라는 조건이 같으면 퍼트의 결정력도 똑같이 커지는 셈이다.
다음 주 열리는 AIG 여자 오픈이 흥미로워진다. 최고의 롱게임을 앞세워 최근 두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유해란은 3연속 우승을 노린다. 아이언 최고인 유해란이 퍼트가 유리한 링크스에서 어떤 성적을 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