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 가는 것이 제일 보기 좋다.’ 울 엄니 명언이다.
가뭄이 계속되면 농부들의 가슴은 마른 장작처럼 바짝 타들어 간다. 논 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면 어머니는 잣나무 아래 장독대에 정한수 떠 놓고 두 손 모아 빌었다. 삼만이 아재는 누렁이를 앞세우고 밭에 나가 비를 기다렸다.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사방 백리 안에 굶는 자 없게 하라.’ 경주 최부자댁 실천 대훈(大訓)이다. 비는 목숨줄이다. 흉년이 계속되면 끼니를 굶는 사람이 많아진다.
어릴 적 입이 짧아 음식을 가려 먹었다. 어머니는 숟갈에 반찬을 얹어 먹였다. 밥을 삼킬 때마다 기뻐하시던 모습! 지금은 안 좋아하는 음식 없고, 못 먹는 것 없는 먹방 돼지다.
이번 여름은 혹독하다. 일 주일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살인적인 폭염(暴炎, Heat Wave)에 습도까지 시너지를 이루며 외출을 자제하라는 경고까지 발생했다.
더우면 에어컨 틀고 밖에 안 나가면 된다. 문제는 텃밭의 채소와 가지 각색으로 핀 꽃들. 아기 주먹보다 작은 과일을 가지에 매달고 숨막히는 더위를 견디는 목마른 나무들!
‘Alexa’에게 매일 수십 번 “오늘 언제 비가 오나요”라고 물었다. 성화에 짜증이 나는지 “일기 예보에 무척 관심이 많으시군요”, 엉뚱하게 대답한다.
비를 기다려는 이유는 또 있다. 사월은 한 달 봄비가 내렸다.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랐다.
“집 대문 앞에 높게 자란 나무 잘라야 될 것 같아.” 옆집 호위무사 브라이언과 경호대장 존이 “나무가 문 앞을 막아 나쁜 사람이 문 열려고 하면 우리가 볼 수 없어요.” 걱정했다. 경호원(?) 염려에 눈물이 핑 돈다. 모르면 괜찮은데 알고 나니 걱정된다. 당장 실천 모드!
키 큰 나무 안 죽이고 옮기려고 비 내리는 날을 학수고대 기다렸다. 드디어 대장정의 날. 정원사와 집사 할배, 이웃사촌들이 뭉쳐 큰 나무를 뒷마당으로 옮기는데 성공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으로 변신, 폭염에 매일 물 주고 쓰다듬는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의 첫 문장은 이상의 ‘날개’ 도입 부분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처럼 가슴을 설레게 한다.
젊은 느티나무는 여고생 숙희가 어머니가 재혼해 비 혈연인 오빠가 된 현규에게 묘한 감정을 갖게 되고 그것이 사랑임을 깨닫게 된다. 피가 섞이지 않은 두 청춘남녀의 사랑은 숙희에게 현규는 절대로 오빠가 될 수 없다는 젊음으로 항거한다.
그들에게 사랑은 생명력이며 미래다. 어떠한 제도도 이 생명력의 몸부림을 제어할 수 없다. 현규와 숙희는 사랑으로 무섭게 뻗어 오르는 젊디 젊은 느티나무다.
“편지를 거기 둔 건 나 읽으라는 친절인가?”라는 문장은 이 소설 최고의 명대사다.
숙희는 시골에 내려온 뒤 뒷산에 올라가 혼자서 견디는 시간을 갖는다. 그곳에는 ‘젊은 느티나무’가 서 있다. 아직 완전히 자라지 않았지만 푸르고 싱싱하게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나무. 숙희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현규의 사랑과 삶에 대한 불안과 슬픔을 곱씹는다.
느티나무는 자연의 생명력을 가진 젊음과 사랑의 에너지를 상징한다. 예부터 오래된 느티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겼다. 가지가 넓게 퍼지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그늘이 깊어 팽나무 은행나무와 함께 정자나무로 불린다.
‘그대가 기억조차 하지 않아도. 나는 늘 당신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도 느티나무는 낮은 목소리로 그 자리를 지킨다.
사는 것이, 목 마른 나무처럼 허기지고 메말라도, 그대가 떠난 청춘의 날들은 마른 잎새로 남아 그리움의 강을 건너 내일로 흘러간다. (Q7 editions 대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