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과 지식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한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배우고 싶어하고, 끊임없이 배워야만 살 수 있으며, 또한 배운 정보와 지식을 활용하고, 더 나아가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고귀한 생물학적 존재다.”
사실상 인간이 지식을 갈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는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아주 기본적인 철학적 질문에서 시작된다. 이 세상에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로 그저 맨몸으로 태어나서, “응애!” 하며 첫울음으로 시작한 우리의 삶이,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지나서 성인기와 노년기에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성 정립’은 누구에게나 해결해야 할 아주 커다란 미로 속의 ‘인생 숙제’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미국의 가족 시트콤 드라마인 〈영 셸든(Young Sheldon)〉에서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재미난 에피소드들 중 하나를 보자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주인공인 ‘꼬마 천재’ 소년 셸든은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처럼 위대한 물리학자가 되는 것이 그의 원대한 꿈이자 미래의 절대적인 인생 목표다. 그는 어느 날 아인슈타인에 관한 책을 읽다가 문득 자신도 그처럼 바이올린 연주를 배우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바이올린 연습이 자신의 과학적 영감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자, 아예 아인슈타인처럼 유대인이 되려고 결심한다. 그래서 가족 저녁 식사자리에서 유대인처럼 “shalom(샬롬)!”이라고 인사하고, 머리에는 하얀색의 ‘yarmulke’ 모자(사실은 그의 엄마가 크로셰 뜨개질한 컵받침)를 쓰고서, 핫도그가 코셔(kosher foods)인지도 묻는다. 그리고 이 10세의 소년은 마침내 침례교에서 유대교로 개종하고자 랍비와 통화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 전화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셸든: 저는 유대교로 개종하고 싶어요.
랍비: 왜 그러니?
셸든: 저도 아인슈타인처럼 훌륭한 과학자가 되고 싶어서 그래요!
랍비: 너의 부모님은 종교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느냐?
셸든: 물론, 절대 안 된다고 하세요. 하지만 제가 ‘개미농장’을 만든다고 했던 때처럼 괜찮을 거예요.
랍비: 그럼 우선 성경부터 읽어보아라.
셸든: 벌써 다 읽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랍비: 그렇다면, 일단은 너의 부모의 종교를 따르는 것이 좋겠구나.
셸든: 또 다른 방법은 없나요?
랍비: 내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렇다. “‘너의 인생을 살도록 해라.’ 이후 만약에 너의 삶이 다해서, 신을 만난다면, 그 신은 너에게 절대로 ‘왜 아인슈타인처럼 살지 않았느냐?’라고 묻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아마도 ‘왜 지금까지 셸든으로서 너의 삶을 (제대로) 살지 않았느냐?’라고 물을 것이다.”
마침내 현명한 랍비의 충고를 듣고서, 셸든은 ‘아하! 순간(Aha! moment)’을 맞게 되고, 이후 부모에게 가서 다음과 같이 말씀을 드린다. “나는 유대인이 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엄마 아빠가 사랑하게 될 ‘무신론적 침례교도’로서 (당당히) 살아 갈 겁니다.”
이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은 누구나 나이를 불문하고 자신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 매우 고군분투한다. 물론 그 근거나 이유를 특정 종교, 전기문, 과학적 논리, 부모의 교훈적 말씀 또는 배우자나 파트너, 더 나아가 친구와 동료와의 여러 관계 속에서 찾을 수는 있다. 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믿고 살 진리와 삶의 목표와 철학과 윤리적 통찰은 자기 자신이 찾아서 정립해 나가야 할 순수한 자신만의 몫이다. 이렇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탐색은 삶과 함께 우리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무제한으로 지속된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