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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이념 위에 세운 나라, 미국의 위대한 모순

Los Angeles

2026.07.2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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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나 정 / LA독자

레지나 정 / LA독자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하는 불꽃놀이는 끝났다. 그러나 단결보다 분열이 더 선명한 기념일이었다. 연방 의회와 백악관이 행사를 따로 치르면서, 대통령 중심의 기념행사는 오늘날 미국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250년 전 식민지 주민들도 독립을 둘러싸고 하나로 뭉치지 못했다. 미국은 탄생부터 모순적이었다.  
 
1775년에 시작된 전쟁을 ‘독립전쟁’이라기보다 ‘혁명전쟁’이라 부른다.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라, 왕의 통치를 끝내고 ‘국민이 주권을 가진 공화국’이라는 전례 없는 정치체제를 세운 건국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1776년 7월4일 발표된 독립선언서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특정한 권리를 부여받았고, 그 권리에는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가 있다”고 선언했다. 지금은 익숙한 문장이지만, 당시로써는 매우 급진적인 정치사상이었다. 서명한 건국 아버지들은 그것이 반역죄의 증거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역사에 동참했다. 미국은 영토가 아닌 이념 위에 세워진 국가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그러나 건국 주역이자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이 수 백명의 노예를 부렸다는 사실은 건국 초기부터 미국의 모순을 드러냈다.  
 
영국군은 대부분이 상비군이었던 반면, 대륙군은 민병대와 지원병 중심이어서 패배와 후퇴를 거듭했다. 조지 워싱턴이 정규군을 육성한 것은 전쟁 시작 3년이 지나서였다. 전세는 많은 영국군이 항복한 ‘새러토가 전투(Battle of Saratoga)’ 이후 뒤집혔다. 혁명전쟁은 영국과 미국의 전쟁인 동시에 식민지 내부에서 독립파와 왕당파가 맞선 내전이기도 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새러토가의 승리를 근거로 대륙군이 이길 수 있다고 프랑스를 설득했다. 프랑스는 1778년 2월 미국과 동맹조약을 맺었고, 이후 약 6000명의 병력을 보냈다. 미국의 독립은 프랑스 정부의 지원이 없었다면 사실상 불가능했다. 전쟁을 끝낸 ‘요크타운 공방전(Siege of Yorktown)’은 국제적 연대의 승리였고, 동맹의 중요함을 보여주었다.  
 
 헌법 역시 치열한 논쟁과 진통의 결과였다. 권리장전 없이 정부에 권한만 부여하는 헌법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연방주의자들의 저항이 특히 뉴욕, 매사추세츠, 버지니아에서 거셌다. 결국 헌법을 먼저 비준한 뒤 권리장전을 추가하자는 절충안이 마련됐고, 제임스 매디슨은 그 약속을 지켰다. 헌법이 삼권분립을 비롯한 정치 체제의 뼈대를 세웠다면 권리장전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헌법을 완성했다.
 
그런데 진짜 주인공들의 서사는 따로 있었다. 조셉 플럼 마틴은15세에 입대해 8년 동안 사병으로 복무했다. 1830년에 익명으로 출간된 그의 회고록은 1950년대에 ‘양키 두들 이등병(Private Yankee Doodle)’이란 제목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지휘관만 조명하던 역사 서술을 뒤집었고, 자유를 위해 모든 미국인이 합심했다는 애국주의적 신화를 거부하며, 전쟁의 진정한 주역은 눈 덮인 길을 맨발로 행군하던 이름 없는 병사라는 것을 알렸다.
 
엘리자베스 프리만은 매사추세츠의 판사이자 민병대 대령이던 존 애슐리 집안의 노예였다. 그녀는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라는 선언을 자신의 권리로 받아들였고, 이 문구를 담은 1780년 매사추세츠 주 헌법을 근거로 소송 끝에 자유를 얻었다. 이후 자신을 변호했던 변호사의 집안일을 하며 돈을 모아 소원대로 딸에게 유산을 남겼다. 프리만의 승소는 매사추세츠 노예제 폐지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국의 지난 250년은 건국 이념과 현실 사이의 모순을 조금씩 바로잡아 온 역사였다. 미국은 혈통이나 종교, 민족으로 규정되는 나라가 아니라, 헌법과 이념에 대한 동의로 공동체를 이룬 국가다. 이 땅에 뿌리내린 한인 1세들 역시 태생이 아닌 동의로 미국인이 됐다. 그러나 현실은 행정부로 권력이 집중되고, 정치적 관용이 줄어들며, 언론의 자유가 압박받기도 한다. 건국 250주년을 보내면서, 우리는 미국이 스스로 했던 약속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그 답이 다음 250년을 결정할 것이다.

레지나 정/ LA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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