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네 얼굴이나 봐”…‘안 씻는 게 애국’ 외치는 땟물 인간에 일갈

중앙일보

2026.07.22 13:00 2026.07.22 13:48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박세영 감독은 영화 ‘지느러미’에서 전쟁과 오염의 여파로 미국과 자본주의 흔적이 사라지고 돌연변이가 등장한 한반도를 상상했다. [사진 에무필름즈]

박세영 감독은 영화 ‘지느러미’에서 전쟁과 오염의 여파로 미국과 자본주의 흔적이 사라지고 돌연변이가 등장한 한반도를 상상했다. [사진 에무필름즈]

남북한이 통일된 근미래. 거리엔 ‘물 절약’ ‘국가 공헌’을 호소하는 프로파간다적 체제 선전물이 가득하다. 오염된 유독성 바다를 막기 위해 해안선을 따라 4000㎞(약 1만리)의 장벽을 세웠다. 지느러미가 생겨난 일부 돌연변이 인간들은 ‘오메가’란 이름으로 격리·감시되며 강제 노역에 내몰린다. 이탈한 오메가(고우)를 쫓던 신참 공무원 수진(김푸름)은 인간인 척 숨어 사는 미스터리한 존재 미아(연예지)를 알게 되면서 국가 이념에 의문을 품게 된다.

독립영화계 ‘괴물 신인’으로 주목받아온 박세영(30) 감독의 신작 ‘지느러미’(22일 개봉)는 상영시간 84분간 홀린 듯 낯선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영화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유년기를 보낸 박 감독이 10대 때 귀국 후 격렬한 성장통과 함께 낯설게 응시해온 한국 사회 해부도를 음울한 미래상에 새겨냈다. 지난해 스위스 로카르노국제영화제(신인감독경쟁 부문) 등에 초청됐고, “장르 영화계에 파장을 일으킬 신예 감독”(할리우드리포터), “몰입도 높은 디스토피아적 이야기”(인디와이어) 등의 호평을 받았다.

“4년에 걸쳐 ‘지느러미’를 만들면서 300개의 편집 버전을 거쳤다”는 박 감독을 15일 서울 종로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만났다. 아이디어의 출발은 그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시절 소설 『모비딕』에서 받았던 영감이다. 박 감독은 “이를 토대로 단편 영화를 만들었고, 그 아이디어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때 할머니를 애도의 과정도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아픔을 겪으며 ‘지느러미’로 확장됐다”고 설명했다. 공포와 혐오 속에 발병 순간 가족도 모르게 사회에서 ‘삭제’되고 죽으면 신속히 ‘처리’되는 오메가의 탄생이다.

영화 ‘지느러미’. [사진 에무필름즈]

영화 ‘지느러미’. [사진 에무필름즈]

‘지느러미’는 한국·독일·카타르 3개국 글로벌 프로젝트로 완성됐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슬픔의 삼각형’(2022)을 만든 필립 보베르의 독일 제작사도 공동제작으로 참여했고, 카타르 도하영화연구소의 제작비 지원도 받았다.

영화 속엔 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능 오염물질 유출의 공포, 남북한의 이념 선전 경쟁도 녹아들었다. “통일 전 남북한 전쟁이 있었다고 설정했다. 그로 인해 파괴된 생태계에서 기형(오메가)들이 생겨나면서 남북한 공공의 적이 오메가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박 감독은 말했다. 남북한이 적대시해온 서로를 대신해 어떻게든 새로운 혐오의 대상을 찾을 거라고 봤다면서다. 분단선이 사라진 한반도를 장벽으로 에워싼 것도 “장벽이 우리 사회의 정체성에 이미 포함돼버렸다는 느낌을 받아온” 게 이유다.

국가는 오메가가 더럽고 독성이 있다며 공포심을 조장하지만, 물이 부족해 안 씻는 게 애국인 상황에서 땟물이 흐르는 여느 인간들과 오메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오메가가 비위생적이라고? 자신의 얼굴을 돌아보라. 누구든 오메가가 될 수 있다”는 게 박 감독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수진과 미아를 마치 한 사람처럼 겹쳐낸 디졸브 장면이 그 주제를 드러낸다. 박 감독은 “맹목적으로 따르는 가족의 전통, 사회의 전통, 나라의 전통이 얼마나 쉽게 파멸될 수 있는지, 또 그런 줄 모르고 이제껏 우리가 얼마나 맹목적으로 따라왔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원정([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