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32세의 한 여성이 자신의 집 거실 소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심장마비. 처음엔 안타까운 자연사로 정리됐다. 남편의 뜻에 따라 시신은 이틀 만에 화장됐고, 사건도 묻혔다.
하지만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부모가 있었다. 어제까지 멀쩡했던, 이제 겨우 30대 초반의 딸이었다. 이미 화장된 시신은 다시 부검할 수 없었지만, 뜻밖의 단서가 남아 있었다. 생전 장기 기증 서약을 했던 덕분에 기증기관에 혈액 샘플이 보관돼 있었던 것이다.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정상 수치의 무려 30~40배에 달하는 테트라하이드로졸린(tetrahydrozoline)이 혈액에서 검출됐다. 약물의 출처를 거슬러 올라간 수사팀 앞에 나타난 용의자는,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그는 일정 기간에 걸쳐 아내의 음료에 해당 약물을 몰래 넣었다고 한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손에 들어온 보험금은 약 3억원.
2018년 9월 미국에서 아내를 일반의약품으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조슈아 훈서커와 그의 아내 스테이시 로빈슨 훈서커. 사진 NBC 뉴스 캡처
소름 끼치는 건, 해당 물질이 영화에나 나올 법한 독극물이 아니었다는 것. 이 약물은 처방전도 필요 없이, 동네 약국에서 몇천원이면 살 수 있는 일반 의약품의 주성분이었다. 컴퓨터를 오래 사용하는 직장인, 시험을 앞둔 학생이라면 한 번쯤 써봤을 법한 ‘이 약’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16세기 약학자 파라셀수스는 이렇게 말했다.
" 약이 독이고, 독이 약이다. 중요한 건 양이다. "
오늘날까지 약학의 대원칙으로 통하는 이 말은 단순한 격언이 아니다. 같은 성분이라도 용량과 사용법, 복용 방식에 따라 사람을 살리는 약이 되기도 하고,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되기도 한다. 더중앙플러스〈뉴스 페어링〉에서는 약학자이자 과학 스토리텔러인 백승만 경상국립대 약학대 교수와 함께 ‘약이 독이 된’ 사건들을 파헤쳤다. 비강 스프레이 때문에 뇌출혈로 사망한 사건 부터 당근 주스를 마시다 단 10일 만에 목숨을 잃은 사연까지.
특히 해열제, 진통제, 비타민 등 우리 주변의 흔한 약이 어떻게 우리 수명을 갉아먹는지,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치명적인 복약 실수도 짚어봤다.
백승만 경상국립대 약학과 교수는 좋은 약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분자 조각가’이자 대중에게 좋은 약과 나쁜 약을 알리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다. 최근엔 의약품을 이용한 범죄 사건들을 파헤친 『의약품 살인사건』(해나무)을 집필했다. 장진영 기자
Q : 일반 의약품인데, 우리 몸을 상하게 할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약이라는 것은 잘 못 쓰면 위험할 수 있고, 잘 쓰면 독이 약이 될 수도 있어요. 처방전 없이 간편하게 살 수 있는 일반 의약품, 예를 들어 타이레놀도 잘못 복용하면 건강을 해칠 수 있어요.
Q : 타이레놀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약인데, 어떻게 복용했을 때 위험한가요?
가장 위험한 순간이 ‘술 마신 다음 날’이죠.
저는 친구가 “숙취가 있어서 타이레놀 먹었다”고 하면, “너는 수명이 5분 줄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간은 우리 몸에 들어온 것들을 다 분해하는 장기잖아요. 그런데 타이레놀의 주 성분,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은 순순히 분해되지 못해요. 일부는 간에서 독성 물질로 바뀝니다. 평소에는 간에 있는 글루타치온이 독성 물질을 곧바로 제거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데요. 타이레놀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복용하거나, 술을 많이 마셔 간이 이미 부담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는 글루타치온이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그럼 독성 물질이 간세포를 공격하면서 간 손상이 생기고, 심한 경우에는 급성 간부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거죠.
Q : 비타민도 우리 몸에 해가 될 수 있는지.
1974년 영국에서 40대 남성이 사망한 채 발견돼요. 당시 검시관이 밝힌 사망 원인은
‘당근 주스 중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