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 ‘가족여행 지원사업’ 청년 30명에 100만원씩 여행 지원 함께 시간 보내며 관계 회복 도와 생계·교육 지원에 지친 마음도 살펴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은 가족돌봄청(소)년을 대상으로 ‘가족여행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가족여행 지원사업 지원을 받아 지난 5월 제주도로 2박 3일 생애 첫 가족여행을 다녀온 유민지(가명)씨 모녀. [사진 월드비전]
“아픈 엄마가 바다를 보며 웃는 모습을 봤어요. 그 순간만큼은 통증도 잊으신 것 같았어요.” ‘가족돌봄청년’인 대학생 유민지(가명)씨는 지난 5월 난치성 자가면역질환인 전신홍반루푸스를 앓는 어머니와 함께 제주도로 2박 3일간의 생애 첫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은 관광 명소를 찾기보다 바다나 자연풍경을 바라보며 쉬는 일정이 대부분이었지만, 모녀에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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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첫 가족여행 “아픈 엄마가 웃어요”
이번 여행은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이 추진한 가족돌봄청(소)년 ‘가족여행 지원사업’을 통해 이뤄졌다. 월드비전은 돌봄 부담으로 여행은커녕 쉼조차 누리기 어려운 가족돌봄청(소)년 30명을 대상으로 가족여행을 지원했다. 참여 가족들은 각자의 상황에 맞게 여행 일정을 직접 계획했으며, 가족별 100만원의 여행비를 지원받아 가족만의 회복의 시간을 보냈다. 단순한 여행 지원을 넘어 돌봄으로 지친 가족들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심리·정서적으로 회복하고 가족관계를 되돌아볼 수 있도록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유씨의 어머니는 20대 초반 루푸스 진단을 받았다. 면역체계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희귀 자가면역질환으로, 평생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병이다. 30년 넘게 병과 함께 살아오며 증상이 호전과 악화를 반복했고, 최근에는 척추관협착증까지 겹치면서 하루 30알이 넘는 약을 복용한다. 통증이 심한 날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어렵고, 장시간 걷는 것은 엄두도 내기 힘들다.
경제적 어려움도 이어지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어머니는 몸 상태가 조금 나아질 때마다 잠깐이라도 일하고 싶어 하지만 병이 악화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일을 시작하기 쉽지 않다.
유씨는 어릴 때부터 또래 친구들처럼 부모에게 의지하기보다 어머니의 버팀목이 되며 자랐다. 어머니 약을 챙기고 집안일을 돕고, 병원에 다녀와야 할 때는 필요한 심부름도 도맡았다. 자연스럽게 ‘돌봄받는 아이’보다 ‘돌보는 아이’의 삶에 익숙해졌다. 그는 “내가 특별히 희생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며 “엄마가 육체적으로 의지하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늘 담담했던 것은 아니다. 사춘기에는 그런 현실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유씨는 “엄마와 잠시 마음이 멀어진 적도 있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엄마를 더 이해하게 됐고 서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나누면서 한층 가까워질 수 있었다”며 “그동안 몸이 아픈 엄마와 여행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월드비전의 지원 덕분에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여행을 계기로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말했다. 어머니도 여행 이후 “평소에는 서로 바쁘고 각자의 역할을 하느라 긴 대화를 자주 하지 못했는데, 여행에서는 그런 여유가 생겨서 행복했다”며 “엄마 병 때문에 아이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생계와 학업 지원은 물론, 이렇게 여행까지 마련해 준 월드비전에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현재 유씨는 월드비전 통합지원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자기돌봄비도 함께 지원받고 있다.
유씨 모녀가 월드비전 송파종합사회복지관에서 월드비전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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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관계서 가족으로 “유대감 확인한 계기”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또 다른 가족돌봄청년 민주훈(가명)씨 역시 지난달, 10여 년 만에 어머니 등 가족과 함께 강원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민씨는 “돌봄 중심으로 흘러가던 일상에서 벗어나 바다를 함께 걷고 식사를 나누는 평범한 시간이 오히려 가장 큰 쉼이었다”며 “돌봄 관계로만 머물렀던 어머니와 다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족’이라는 유대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유씨와 민씨 같은 ‘가족돌봄청년’은 질병이나 장애 등을 가진 가족을 장기간 돌보며 생계와 가사를 함께 책임지는 청년을 말한다. 2022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가족돌봄청년의 우울감 경험률은 일반 청년보다 7배 이상 높고, 미래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 비율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가족돌봄청년은 또래와 달리 가족의 병원 동행, 가사, 생계까지 함께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 돌봄 부담이 길어질수록 학업과 진로를 포기하거나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에 월드비전은 현재 가족돌봄청(소)년을 대상으로 생계비와 교육비 지원은 물론 심리·정서 프로그램, 자조모임, 진로·자립 지원 등을 시행하며 돌봄으로 인해 자신의 삶과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번 가족여행 지원사업 역시 이러한 지원의 연장선에서 마련됐다. 단순히 여행 경비를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돌봄의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 가족이 서로를 가족으로 바라보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데 의미를 뒀다.
월드비전 국내사업본부 김순이 본부장은 “가족돌봄청(소)년은 생계와 학업, 돌봄을 동시에 감당하면서 정작 자신과 가족을 위한 시간을 갖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이번 가족여행 지원사업은 여행 자체보다도 가족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회복하는 시간을 선물하고자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도 생계와 교육 지원을 넘어 심리·정서 지원과 가족관계 회복 프로그램을 확대해 가족돌봄청(소)년들이 돌봄 때문에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