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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밥은 이민국이 사라

Los Angeles

2026.07.2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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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아 변호사

김원아 변호사

한국 문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을 꼽으라면 단연 ‘밥 사는 문화’일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밥 한 끼 대접하는 행위에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숫자만큼 다양한 셈법이 작동하기도 한다.  
 
테이블에 계산서가 도착하는 순간 미묘한 눈치 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누가 먼저 지갑을 여는지를 보면 그 자리의 권력 관계와 마음의 무게가 대략 드러난다. 나이, 지위, 신세를 진 정도, 그리고 그날의 안건까지 온갖 변수가 순식간에 계산되면서 누군가의 손이 먼저 카드로 향한다. 그러니 밥값을 낸다는 것은 단순한 지불 행위가 아니라, 이 관계에서 본인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혹은 어떤 마음가짐인지를 스스로 선언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밥의 사회학’은 변호사와 의뢰인 관계에서도 어김없이 작동한다. 케이스가 한창 진행 중이거나 첫 미팅을 할 때는 대개 의뢰인이 밥값을 낸다. 인생이 걸린 사건을 잘 맡아 달라는 간절함의 표현이다. 반대로, 변호사가 영업 중이라면 지갑을 여는 쪽은 변호사여야 도리에 맞다. 케이스의 진행 과정에 따라 이 공식도 조금씩 흔들리지만, 마침내 좋은 결과가 나오는 순간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의뢰인과 변호사’에서 ‘함께 산을 넘은 사람들’로 미묘하게 바뀐다.  
 
그렇다면 흥미로운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길고 지난했던 영주권 취득 절차를 마치고 마침내 그린 카드를 손에 쥔 의뢰인과 그 케이스를 끝까지 책임진 변호사가 식사한다면,  이때는 누가 밥값을 내야 할까?  
 
의뢰인 입장은 명확하다. 불안할 때마다 중심을 잡아준 변호사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도 만만치 않다. 의뢰인의 영주권 승인은 이민법 변호사 입장에서는 자식의 대학 합격 소식만큼이나 기쁜 일이라, 축하의 마음을 담아 한턱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다 보니 계산서가 도착하는 순간, 테이블 위에는 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아닙니다,  변호사님.  제가 사야죠!”라며 카드를 꺼내는 의뢰인과, “영주권 취득이라는 역사적인 날인데 제가 사야죠!”라며 손사래를 치는 변호사의 실랑이가 벌어진다.  이 아름답고도 민망한 풍경은 한국인만의 독특한 장면일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이 밥값은 변호사도 의뢰인도 아닌 이민국(USCIS)이 내는 게 맞지 않을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재량권’이라는 모호한 이름 아래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 이민정책, 어제는 됐던 서류가 오늘은 안 된다는 심사 기준과 트렌드의 변화,  그리고 때로는 도무지 납득하기어려운 이유로 날아오는 추가 서류 요청(RFE)까지….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해  오는 동안 변호사와 의뢰인은 사실상 한 팀이 된다. 이민국의 메일 한 통에 의뢰인은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절망을 맛보고,  변호사는 주말을 통째로 반납한 채 서류 더미에 파묻혀 반박 논리를 짠다. 이민국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함께 상대하며 쏟아부었던 그 수많은 시간,  스트레스로 빠져버린 머리카락, 카페인에 의지하며 밤을 지새운 날들이 그 토대다. 승인 통지서 한장을 받기까지 들인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이민국은 우리에게 미슐랭 쓰리스타 코스 요리 한 끼쯤은 빚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텍사스나 캘리포니아의 이민국 서비스 센터에서 밥값 수표를 보내줄 리는 만무하다. 결국, 그날의 밥값 계산은 두 사람 중 더 빨리, 혹은 더 완강하게 카드를 내민 쪽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누가 돈을 내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가혹하고 답답한 이민 행정을 상대로 끝내 승리를 거두고 마주 앉아 먹는 밥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해방의 맛’일 테니까.  
 
이민국을 상대로 그 만만찮은 과정을 함께 버텨낸 사이에 나누는 식사라면 순두부찌개 한 그릇이라도 이미 그 자체로 완벽한 축제다.  그러니 일단, 승인 노티스부터 받고 볼 일이다.

김원아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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