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 (La La Land) 현대의 고전이 되어버린 로맨틱 뮤지컬 사랑보다 선택을 이야기한 청춘의 성장담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는 마지막 엔딩
데미안 셔젤 감독의 ’라라랜드‘가 세상에 나온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됐다. 셔젤 감독은 2010년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그러나 투자자를 찾지 못해 프로젝트는 약 6년간 표류했다. 아마존 프라임, 애플TV에서 대여 가능. [Lionsgate]
끝났는데도 끝나지 않는 영화가 있다. 이야기가 미완이어서가 아니라, 영화가 끝나는 순간부터 관객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라라랜드’가 그렇다.
2016년, 엘에이 어느 겨울의 오후. 스크린 위에 마법처럼 번져 나가던 보랏빛 황혼을 기억하는가. LA 110번 고속도로 교통 정체 위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차 지붕을 박차고 일어나 일제히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때, 우리는 직감했다. 이 영화가 현실의 바깥, 꿈이 아직 살아 있는 어딘가로 우리를 데려가리라는 것을.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된 ‘라라랜드’는 10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 하나를 던진다. 꿈과 사랑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과연 옳았는가.
미아(엠마 스톤)는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 내 카페에서 일하며 오디션을 전전하는 배우 지망생이다. 세바스티안(라이언 고슬링)은 정통 재즈의 가치를 믿지만, 생계를 위해 레스토랑 피아노 연주자 자리를 전전하는 음악가다. 두 사람은 LA 파티장과 도로 위에서 거듭 엇갈리다 결국 서로에게 끌리고, 그리피스 공원 천문대 계단 아래에서 황혼과 별빛을 배경으로 첫 춤을 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사랑도 깊어지고, 두 사람은 서로의 꿈을 북돋운다.
세바스티안은 미아에게 재즈의 역사를 가르쳐 주고, 미아는 세바스티안이 자신만의 클럽을 꿈꾸도록 용기를 준다. 미아는 1인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세바스티안은 자신만의 재즈 클럽 개업을 목표로 삼는다. 미아는 세바스티안 덕분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어놓을 용기를 얻고, 세바스티안은 미아 덕분에 언젠가 자신의 이름을 건 재즈 클럽을 열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미래를 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꿈의 실현을 위해 둘은 각자의 길을 걸어야 하고, 그로 인해 연인들은 갈등하기 시작한다. 세바스티안은 생계를 위해 자신이 경멸하던 팝 재즈 밴드에 들어가고, 잦은 투어로 두 사람 사이의 거리도 멀어진다. 미아의 연극은 참담한 흥행 실패로 끝나고, 그녀는 배우의 꿈을 포기하려 한다. 결별 직전, 파리의 영화사로부터 오디션 연락을 받은 미아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결국 LA를 떠난다.
그리고 5년 후. 성공한 배우가 된 미아는 남편과 함께 재즈 클럽 ‘세브스(Seb’s, 세바스티안의 줄임말)’ 앞에 멈춰 선다. 세바스티안의 눈과 미아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영화는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을 가정하는 눈부신 몽타주를 펼쳐 보인다. 화려하고 아름다웠지만 결코 일어나지 않은 그들의 삶을. 그리고 두 사람은 미소를 나눈 채 각자의 현실로 돌아간다.
배우를 꿈꾸는 미아와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티안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오디션에서 번번이 탈락하는 배우 지망생, 생계를 위해 원치 않는 연주를 해야 하는 음악가. 꿈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청춘의 로맨스는 영화가 오래 기대 온 소재다.
대부분의 로맨스 영화는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 이야기를 끝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랑이 두 사람을 성장시키는 과정에 더 큰 관심을 둔다. 두 남녀는 우연히 만나 서로의 재능에 매료되고,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하려는 순간마다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가 되어 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미래는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없는 시간이기도 하다.
데미안 셔젤 감독의 ’라라랜드‘가 세상에 나온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됐다. 셔젤 감독은 2010년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그러나 투자자를 찾지 못해 프로젝트는 약 6년간 표류했다. 아마존 프라임, 애플TV에서 대여 가능. [Lionsgate]
2016년 개봉 후 ‘라라랜드’는 화려한 뮤지컬과 로맨스로 기억됐다. 아직도 많은 사람은 이 영화를 꿈에 관한 영화라고 말한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이 영화는 사랑을 노래한 작품이라기보다 인생의 선택을 가장 아름답게 기록한 영화로 다가온다.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보면, 영화가 끝내 말하고자 한 것은 꿈보다 ’선택‘에 가깝다. 인생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없다. 영화는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선택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래서 ‘라라랜드’의 이별은 비극이 아니다. 누군가의 잘못도, 극적인 사건도 없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했기에 각자의 가능성을 응원했고, 그 응원은 결국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했다. 이 역설이야말로 영화가 10년이 지나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다.
우리는 종종 사랑하기 때문에 놓아주는 비극의 주인공들과 만난다. 꿈을 위해 떠나는 사람도 있고, 가족을 위해 꿈을 미루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삶은 영화처럼 극적이지 않지만, 선택 앞에서 망설이는 순간들은 누구에게나 비슷하다.
시간은 영화를 바꾸지 않는다. 다만 영화를 바라보는 사람을 바꾼다. 스무 살의 관객은 미아와 세바스티안의 사랑을 응원하지만, 서른과 마흔의 관객은 그들이 결국 같은 길을 걸을 수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라라랜드’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는 영화다.
젊을 때는 로맨스였던 작품이 어느새 성장담이 되고, 다시 세월이 흐르면 삶의 회고록처럼 읽힌다. 그때는 ‘낭만적인 이별’로 받아들였던 엔딩이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의 기록’으로 다가온다. 꿈을 향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그 시절과, 선택의 무게와 돌이킬 수 없음을 몸으로 알게 된 지금 사이에서 ‘라라랜드’는 전혀 다른 영화로 읽힌다.
라이언 고슬링은 촬영 전 3개월 동안 하루 2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해 대부분의 연주 장면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다. [Lionsgate]
엠마 스톤은 취약함과 의지가 공존하는 미아를 섬세하게 구현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연기력보다 내면이 먼저 느껴지는 드문 연기였다. 라이언 고슬링은 감정을 절제한 채 풍성한 내면을 지닌 세바스티안을 통해 ‘꿈에 사로잡힌 남자’의 또 다른 초상을 훌륭히 구현해 냈다.
‘꿈쟁이들의 도시(La La Land)’라는 제목에는 현실과 분리된 곳, 즉 허망한 도시라는 냉소적 의미도 담겨 있다. 셔젤은 그 두 의미를 동시에 껴안으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 꿈을 좇는 일과 사랑을 지키는 일이 언제나 함께일 수는 없다는 사실까지도.
영화 말미, 두 사람이 ‘함께였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하는 약 3분간의 몽타주 시퀀스는 오늘 다시 봐도 가슴 깊이 저며 온다. 그 장면들은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마음속 어딘가에 접어 보관하고 있던 ‘선택하지 않은 삶’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