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는 이상한 인간이 하나 등장한다. “이콘(Econ)”이다. 이콘은 경제학 교과서 속에만 사는 인간이다. 이콘은 늘 합리적이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남의 말에 속지 않고, 광고에 흔들리지도 않는다. 주식이 오른다고 흥분하지도 않고, 떨어진다고 공포에 떨지도 않는다. 이콘은 충동구매도 하지 않고, 보험을 들 때도 불안감이 아니라 확률과 기대값으로 판단한다. 한마디로 이콘은 모든 정보를 알고, 모든 계산을 하고, 늘 자기 이익을 최대화하는 선택만을 하는 완벽한 경제적 인간이다.
하지만 이런 인간은 세상에 없다. 현실의 인간은 이렇게 살지 않는다. 소비도 대부분 기분이 땡기는 대로 한다. 주식도 “반도체 호황”이라는 말에 흔들린다. 보험도 통계를 따지기 보다는 아는 사람의 권유나, 죽어서 무엇인가를 남겨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에 가입한다. 부동산 구입도 분위기에 휩쓸리고, 세금도 전문가의 한마디에 걱정과 안심을 반복한다. 실제 인간은 이콘보다 훨씬 덜 합리적이고, 훨씬 더 감정적이며, 훨씬 더 주변 분위기에 약하다.
내가 요즘 기피하는 인간 유형은 “이콘”이 아니라 “이꼰”이다. 이꼰은 내가 만든 말이다. “이기적인 꼰대”의 줄임말이다. 젊어서는 도전과 저항을 외치고, 독재에 항거하고, 권위에 맞서고, 기득권을 비판했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이 젊었을 때는 ‘나이가 들면 뇌가 썩는다.’고 주장했고, ‘노인들은 투표하지 말고 집에서 쉬어라’라고 외쳤다. 하지만 이제 자신들이 나이가 들자 젊은이들을 ‘생각이 없는 자들‘ ‘혼이 나야하는 자들’이라고 부르며 얕잡아 보면서, 딸의 학력과 경력을 위조하고, 아들의 시험을 대신 봐주는 이기적이며 고집센 꼰대가 되어버렸다.
이꼰의 가장 큰 특징은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이다. 입으로는 정의와 공정, 그리고 약자를 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가족, 자기 편, 자기 조직, 자기 진영의 이익만을 챙긴다. 이꼰은 늘 명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노골적인 이기주의자라면 차라리 알아보기 쉽다. “나는 내 이익만 챙기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최소한 정직하기라도 하다. 하지만 이꼰은 자기 이익을 정의라는 말로 포장한다. 그들은 평생 자기합리화를 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든다. 그래서 누구나 조금씩 꼰대가 될 위험을 안고 산다. 경험이 쌓이면 말이 많아지고, 지킬 것이 생기면 방어적이 되고, 잃을 것이 많아지면 보수적이 된다. 이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윈스턴 처칠이 한 말로 흔히 일컬어지는 ‘젊어서 진보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것이고, 나이들어서도 계속 진보면 뇌가 없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문제는 나이가 드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변했음에도 여전히 정의로운 척하는 것이다.
이콘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합리적 인간이다. 하지만 이꼰은 현실 속에 너무나 많다. 이콘은 너무 완벽해서 문제지만, 이꼰은 너무 뻔뻔해서 문제다. 나이가 들면서 꼰대가 될 수밖에 없다하더라도, 이꼰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 자녀, 내 가족의 기회만 생각하기에 앞서 남의 자녀도 얼마나 귀한 지를 생각해야 한다. 나의 잘못을 변명하기 전에 객관적으로 나를 성찰해야 한다. 내편의 행동을 무조건 감싸기 전에 상대편의 입장을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젊었을 때 외쳤던 원칙을 다시 떠올려 보고, 내가 과거에 싸웠던 기득권을 지금 내가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치열하게 돌이켜 봐야 한다. (변호사, 공인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