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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비로소 명문이 된 나의 모교

Los Angeles

2026.07.2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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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올해는 여고를 졸업한 지 60년이 된 해다.  60이란 숫자는 나를 설레게 했다. 한국에 나가 모교 홈 커밍데이에 참석하려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미국에 사는 다른 동창들도 마찬가지였다.  
 
궁리한 끝에 우리끼리 모여 60주년을 축하하기로 했다. 다른 주에서 마침 딸 집에 와 있는 친구, 한국에서 자식들을 보러 온 친구 등 모두 7명이 되었다. 모두 다 만나고 싶었지만 2명은 사정이 있어 다섯명이 만났다.  
 
트래픽이 심한 LA에서 만나려니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도 모두 약속한 날짜에 시간 맞춰 잘 나왔다. 장거리 운전이라 대부분 남편이 운전을 해주었다.  
 
평소의 만남보다 더 특별한 모임이어서인지 모두 떠들썩하게 인사하고 식당의 예약했던 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음식을 주문하고 간단하게 졸업 60년을 기념했다. 가장 먼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목사 사모인 친구가 기도했다. 다음 순서로 교가를 불렀다. 내가 미리 3절까지 프린트를 해서 가지고 갔다.  
 
교가는 학교에 다닐 때도 1절만 부른 것 같은데 우리는 왠지 3절까지 다 부르고 싶었다. 모두 가사를 틀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3절, “아름답다, 들에 핀 꽃송이 같이, 가는곳 거리마다 향기 퍼지네”라는 구절을 부르는데 우리는 목이 메었다. 그러나 끝까지 기운차게 후렴 “무등산과  마주 솟은 광주 수피아, 잊지 못할 은혜의 집 우리 수피아”를 합창했다. 모교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살아온 각자의 삶을 생각하며 교가를 끝까지 불렀다. 가사를 지은 이은상 시인과 작곡을 한 박태준 님께도 감사를 드렸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위층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얘기하기 좋은 곳을 찾아 한쪽 벽 옆으로 앉아 차를 시키고 본격적으로 학창 시절로 돌아갔다.  
 
우리 학교는 역사가 깊은  미션 스쿨이지만 공부로 유명한 학교는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 재학생 가운데는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크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명문 학교에 응시했다가 낙방하고 차선으로 입학한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 얘기들을 나누며 철이 없었던 그때를 후회했다. 그래서 어떤 친구는 그때는 몰랐지만, 하나님을 알게 해준 학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년 장학금을 보낸다고 했다. 우리의 얘기는 비로소 우리 학교가 우리에게는 최고였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우리의 모교를 명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우리 모교는 특히 인성 교육에  많은 정성을 쏟았다. 해마다 봄, 가을에 김형석 교수님, 신사훈 박사님 등 유명한 분들을  초청해 1주일씩 부흥회를 해 주었던  일, 다른 학교에는 없는 기숙사가 있어 나처럼 지방에서 온 학생들은 안전하게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여서 건물이 외국학교처럼 멋있고 빨간 벽돌을 타고 담장이가 올라간 교정은  소녀들에게 낭만을 꿈꾸게 하였다. 철따라  변하는 아름다운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 그 길을 걸으며 등하교했던 소녀들, 해마다 극장을 빌려  음악 발표회를 열었던 일, 우리는 아련하게 그때를 그리며  이런 아름다운 학교를 더욱더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길 것을 다짐했다.  
 
며칠 후에는 이날 모임에서 찍었던 기념사진들을 동창회 카톡에 올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도 공유했다.  
 
동양철학에서는 60이라는 숫자를 시간과 공간을 나누는 기준이자 완전한 순환, 새로운 출발, 그리고 삶의 결실을 상징하는 숫자라고 한다. 이 뜻깊은 해에 우리는  멀리 LA에서 이제는 우리 가슴속에 명문으로 자리잡은 수피아여고 졸업 60주년을 기리고 자축했다. 

이영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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