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이란을 상대로 한 대규모 공격 준비를 마쳤다”고 밝혔다. 미군은 이미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장거리 전략폭격기 ‘B-1 랜서’를 전쟁 재개 이후 처음으로 실전 투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전용기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전면전 돌입에 무게를 싣기에 앞서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현재와 같은 제한적 공습만으로는 이란을 굴복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적으로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제유가가 다시 치솟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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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결정 직전…충분한 고통 안 겪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전 어느 때보다 더 큰 대규모의 공격을 검토하고 있다”며 “(공격) 결정을 내리기 직전으로, 우리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말했다.
미 중부사령부는 23일 이란에 위치한 군사 목표물에 대한 공습 장면을 공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13일째 이어지고 있는 제한적 공습을 뛰어넘는 전면전에 해당하는 대규모 공격을 검토하고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내가 요청하면 이스라엘은 2분 안에 (공격에) 합류할 것”이라며 전면전에 대비한 이스라엘과의 사전 논의까지 마쳤음을 시사했다.
홍해를 지나는 유조선을 공격하고 있는 예멘의 친(親)이란 무장세력 후티를 향해선 “이런 일(상선 공격)을 다시 한다면, 후티가 이란의 대리 세력이라는 점에서 이란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후티 역시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이란은 협상을 원하고 있다”면서도 “그들은 아직 충분한 고통을 겪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전면전에 해당하는 공격을 통해 이란의 완전한 항복을 받아낸 뒤 미국의 요구안을 100% 관철시키는 형식의 협상을 구상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23일 백악관에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LA다저스 선수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자신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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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만으론 한계…‘영원한 전쟁’ 우려”
트럼프 대통령의 ‘전면전 돌입’ 명령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CNN은 이날 당국자 2명을 인용해 “중앙정보국(CIA)과 국방정보국(DIA) 모두 현재와 같은 공습만으로는 이란의 협상 태도를 바꾸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3일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LA다저스 선수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한 자리에서 우승한 선수들이 받은 우승 반지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싱크탱크 중동연구소(MEI)의 이란 전문가 알렉스 바탄카도 CNN에 “이란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보다 더 오래 버틸 수 있다는 믿음 속에 경제·군사적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의 ‘버티기’가 가능한 이유로는 호르무즈해협을 꼽았다. 해협 봉쇄로 전세계에 유가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고,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 항로까지 봉쇄하는 데 성공할 경우 효과는 더 커질 수 있다. 이란이 중동 국가들의 에너지 시설을 집중 타격하는 것도 전 세계로 공급되는 중동산 원유를 차단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실제 이날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이 알리 알자이디 이라크 총리가 테헤란에 방문해 전달한 트럼프 대통령의 휴전 제안을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이란은 “호르무즈해협 통제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남겨두는 일시적인 합의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을 전달했다.
김영옥 기자
CNN은 이란과의 끝없는 주고받기식 타격은 추가적인 미군 인명 피해를 낳고 호르무즈해협을 트럼프 대통령이 비판해 온 ‘영원한 전쟁’과 유사한 지속적 위기 상태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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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 비축된 무기…공습해도 입구만 손상”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스라엘과 서방 당국자들을 인용해 “이란은 깊은 산속에 있는 미사일 기지를 비롯해 교량과 항만, 생산시설 등 공습으로 손상된 인프라를 신속히 복구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의 당국자들은 복구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 우려할 정도”라고 전했다.
지난달 30일 촬영된 위성사진에 이란의 지하 핵시설이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곡괭이산'의 모습이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3월 이란 서부 칸가바르의 미사일 기지 터널 입구 2곳과 진입로가 공습으로 파괴됐지만 불과 몇주 뒤 위성사진엔 진입로가 깨끗하게 재개된 모습이 확인됐다. 다리를 공격해도 며칠이면 복구가 완료되고 있다.
특히 미사일 기지의 경우 공습 작전으로는 입구를 무너뜨리는 정도의 피해밖에 주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막대한 비용을 투입한 미군의 공습 이후 이란이 입구 굴착만 거친 뒤 전력을 즉시 정상화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미사일과 드론을 조립하는 데 필요한 부품은 이미 공습으로 피해를 줄 수 없는 지하시설에서 지속적으로 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3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설치된 대형 광고판. 트럼프 대통령이 관에 누워있는 듯한 모습의 그림 밑에 "트럼프를 죽일 것"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미군의 공격으로 “이란의 무기 역량이 90% 줄었다”며 궤멸적 타격을 주장했지만, 불과 이틀 뒤인 17일 요르단 내 미 공군기지의 방공망은 이란의 미사일 3발에 뚫리면서 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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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폭격기 재투입…지상군은 신중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주변에 병력을 집중하고 있다. 장거리 전략폭격기 B-1를 실전에 투입했고, F-35와 F-16 전투기들이 대기하고 있다. 특히 독일 란트슈툴 지역 의료센터에 150명이 넘는 의무 인력을 추가로 배치했다. 인명피해를 감수한 작전이 구상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이날 이란에 대한 13일째 공습 사실을 공개하며 이례적으로 “미군 5만명 이상이 현재 중동 전역에서 작전을 수행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B-1 초음속 전략폭격기. 연합뉴스
다만 전면적인 지상군 투입에는 신중론이 나온다. 실제 미 해군 트리폴리 상륙준비단(ARG)과 제31해병원정대(MEU)는 일본 오키나와 해군기지로 복귀했다. 제31해병원정대는 지상전 돌입 시 투입될 핵심 전력으로 거론돼 왔다. 이들의 철수에 따라 중동 지역에서 미 해병 병력은 2200명 수준으로 파악된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게 공격을 받은 선박에 대한 피해는 미국이 보유한 이란의 동결자금으로 보상하게 될 거라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미국은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 당시 동결된 이란 자금 중 카타르에 있는 60억 달러(약 9조원)를 풀어주기로 했는데, 이를 보상금으로 쓰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란의 백기투항 전에 맺었던 MOU를 부정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2일 이란전쟁에서 사망한 장병들의 유해 귀환식에 참석한 뒤 백악관으로 복귀하는 전용헬기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전면전 돌입을 검토하는 가운데 미 연방하원은 이날 의회의 승인 없이 이란과의 전쟁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하는 전쟁권한 결의안을 찬성 214표, 반대 208표로 가결했다. 공화당 의원 4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다만 해당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별도의 공동결의안은 이날 상원 표결에서 찬성 47표, 반대 49표로 부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