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재가 ‘HIM SUNGJAE’라고 쓰인 스웨터를 입고 3M 오픈 1라운드에서 경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임성재가 변했다. 원래 그는 골프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었다. 핵심 역량에 집중하면 다른 것들은 다 따라온다고 믿었다. 그런 집념으로 6년 연속 투어 챔피언십에 진출했고, 통산 상금 3710만 달러(약 542억원)를 벌어들였다. 그런 그가 요즘 필드 위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작은 올해 마스터스였다. 2라운드 아침 일찍 경기한 임성재는 7번 홀에서 스웨터를 벗었는데, 화려한 새 무늬가 인쇄된 티셔츠가 드러났다. 의류 스폰서인 말본이 마스터스를 맞아 대회장 주변에 서식하는 새들을 형상화해 넣은 옷이다. 새 문양이 꽤 커서 과감한 패션이었고, 그만큼 시선을 끌었다. 같은 브랜드 후원을 받는 제이슨 데이(호주)도 연습 라운드 때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어 화제가 됐다.
임성재는 “스웨터를 벗자마자 버디가 나왔다. 보시는 분들도 이 옷을 좋아하셨다”라고 했다.
이번 주 3M 오픈 1라운드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상의 전면에 대문자로 ‘HIM’, 그 아래 ‘SUNGJAE’가 큼지막하게 박힌 푸른 스웨터 차림으로 티박스에 섰다.
요즘 해외 스포츠계와 젊은 세대는 ‘He is HIM’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는 진짜다”, “대단한 존재다”라는 뜻이다. 압도적인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He is HIM!”이라고 환호한다. ‘HIM SUNGJAE’는 임성재가 곧 ‘진짜(HIM)’라는 의미를 내포한 트렌디한 문구다. 그의 영문 성(姓)인 ‘IM’에 ‘H’를 붙여 재치 있게 언어유희를 더했다.
임성재. 자신의 이름과 '말본의 프랑스 컬렉션'이라는 문구가 자수로 새겨진 셔츠를 입었다. AFP=연합뉴스
날씨가 따뜻해지자 임성재는 스웨터를 벗고 자신의 이름과 ‘말본의 프랑스 컬렉션’이라는 문구가 자수로 새겨진 맞춤 제작 말본 셔츠를 드러냈다.
선수 출신인 그의 캐디는 의류 브랜드 말본의 모델이다. 캐디의 소개로 임성재는 지난 3월 말본과 공식 후원 계약을 맺으며 한국 남성 PGA 투어 프로 최초로 이 브랜드를 입는 선수가 됐다.
말본은 얌전한 브랜드가 아니다. 제이슨 데이는 지난해와 올해 마스터스에서 헐렁하고 도발적인 의상 탓에 오거스타 내셔널로부터 “조끼를 벗어달라”는 제재까지 받았다. 패션 논란 때문에 경기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데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임성재도 이 흐름에 올라탔다. 자신을 꾸미고, 타인의 시선을 즐기기 시작한 모습이다. 공만 잘 치자라고 생각했던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니다. 임성재는 풋조이 PRO/SLX 골프화 광고모델도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골프는 본래 멋과 스타일이 넘치는 스포츠였다. 2차 대전 전후 활약한 벤 호건과 샘 스니드만 해도 페도라나 트위드 캡을 쓰고 넥타이와 클래식 구두까지 차려입던 필드의 신사들이었다.
골프 황금기인 1960년대는 패션 황금기이기도 했다. 더그 샌더스는 ‘페어웨이의 공작새’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화려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가 “그가 걸어갈 때면 크레용 한 상자가 움직이는 듯하다”고 기술했을 만큼 파격적인 색감을 자랑했다. 팬들 역시 아널드 파머의 스코어만큼이나 샌더스가 선보일 그날의 패션에 열광했다.
치치 로드리게스는 놋쇠 와이어 테의 레이밴 선글라스와 챙이 짧은 밀짚모자를 시그니처로 삼아, 퍼터로 투우사 퍼포먼스를 펼치며 필드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헌팅캡에 무릎을 덮는 하얀 스타킹, 니커보커스 팬츠를 입고 1999년 US오픈을 제패한 페인 스튜어트의 모습은 지금도 골프 팬들의 기억 속에 선명하다.
그러나 타이거 우즈 등장 이후 골프웨어는 후원사 로고가 들어간 캡 모자와 기능성 폴로셔츠, 스랙스 조합으로 모듈화되기 시작했다. 필드 위 골퍼의 개성이 줄었다.
잭 니클라우스는 커리어 초반 실력은 뛰어났지만 옷매무새는 투박한 골퍼였다. 하지만 이후 스타일리시한 옷차림으로 변신하며 ‘옷 잘 입는 골퍼’로도 사랑받았다. “공만 잘 치자” 신념을 가졌던 임성재도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