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부산시 동구 범일동 ‘이중섭 거리’. ‘천재 화가’로 불렸던 이중섭(1916∼1956)이 한국전쟁 당시 피란을 와 2년여간 머물렀던 동네다. 이곳의 약 400m 구간 주택 담벼락 등에 ‘소’와 ‘길떠나는 가족’ 등 이중섭의 대표 그림들과 그의 가족에게 보낸 절절한 편지가 전시돼 있다. 그는 낮에는 부두 노동자 등으로 일하고 밤에는 그림을 그리며 힘겨운 피란생활을 견뎌냈다. 특히 이 시기 그는 종잇값이 없어 담뱃갑 은박지에 철필 등으로 그림을 그린 ‘은지화’를 그렸는데 전쟁 속에서도 미술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당시 예술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부산이 피란수도였던 시기 전국에서 몰려온 피란민 중에는 예술가들도 3000여명이나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전쟁의 격랑 속에서도 자신들의 삶과 존재를 글과 그림, 노래로 풀어냈다. 그 구심점 노릇을 했던 곳이 바로 광복동과 남포동 일대의 80여개 다방이었다. 부산시는 19일부터 열흘간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부산 개최에 맞춰 이들 피란 예술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역사문화 투어’와, ‘피란수도 부산 야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다시 한번 피란 예술인들이 주목받고 있다.
1951년 부산 중구 광복동 '밀다원' 다방 앞 모습. 사진 부산근현대사료연구소
광복동과 남포동은 피란수도 시기 행정기관, 학교, 은행, 신문사·방송국이 모여 있었다. 또 부산역과 자갈치·국제·부평시장, 부산항과 가까워 많은 피란민이 북적였다. 피란 예술인들도 레코드사, 영화사, 극장 등 문화시설이 몰려 있던 이곳 다방으로 모였다. 다방은 예술인들의 교류 장소, 창작 공간 및 전시장 노릇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생계를 위한 일거리를 구할 수 있는 곳이어서 더 많은 예술인이 모였다.
“서울서 온 문화인들은 모두 밀다원에 모인다지요.”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김동리가 1955년 『현대문학』4월호에 발표한 ‘밀다원 시대’의 한 구절이다. 이 소설은 부산으로 피란 온 예술가들의 우정과 비극을 다루고 있는데 소설 속 배경인 밀다원은 실제 광복동에 있었다. 피란수도 시절 수많은 문인의 작업 공간이었다.
김환기 화가 등 추상파 화가 그룹의 아지트 역할을 했던 ‘금강다방’은 담뱃갑 속 은박지에 그림을 그린 이중섭의 ‘은지화’가 제작된 곳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르넷쌍스’ 다방은 가장 많은 전시회가 열렸던 곳이다. 실제 광복동 다방 등에서는 1950년 11월부터 53년 12월까지 3년간 107회의 미술전시회가 열려 직전 3년여보다 3배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 주요 화가들의 작품으로는 이중섭의 ‘비둘기를 안고 있는 가족’(1950년), 김환기의 ‘피란열차’(1951년), 김기창의 ‘부산 천막교실’(1952) 등이 있다.
김환기 '피란열차'. 사진 환기재단ㆍ환기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인 이중섭 은지화.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당시 이중섭 등 피란 온 화가들은 생계를 위해 대한도기주식회사에서 핸드페인팅 기법으로 장식용 도자기(산수화·인물화·풍속화·서양화)를 만드는 작업에도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 피란 음악가들이 부산에 오면서 피란살이의 고단함을 표현한 대중가요들도 많이 생겼다. 대표적인 노래가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경상도 아가씨’ 등이다. 당시 전쟁으로 한국 음반시장은 최악의 침체기였지만 오히려 부산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기존 코로나 레코드사와 태평 레코드사 외에 도미노, 미도파 등의 음반사가 부산에 설립돼 활동했다. 이들은 휴전 이후 한국 대중가요계를 이끄는 주요 음반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 중 도미노는 ‘빈대떡 신사’와 ‘엽전 열닷냥’을 부른 가수 한복남이 세운 레코드사다. 그는 미군 부대에서 나온 마그네틱 테이프와 녹음기로 부산 아미동 동사무소 빈공간에 녹음실을 마련해 음반을 제작했다. 그런 뒤 막걸리 배달 자전거에 레코드판을 싣고 국제시장이나 광복동 다방 등을 돌며 음반을 판매했다. 작곡가 백영호 등이 활동했던 미도파는 ‘동백아가씨’ ‘경상도 아가씨’ 등을 제작했는데 우리나라 최대 음반사인 지구레코드의 전신이다.
부산 범일동 이중섭 거리 모습. 사진 부산시
이들 음악가가 자주 교류하고 소통했던 대표적인 곳은 음악가 배도순이 설립한 ‘문화장 다방’이다. 비원 다방에서는 작곡가 윤용하가 박화목 시인의 시를 받아 이곳에서 가곡 ‘보리밭’을 작곡했으며,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청음 훈련을 받았던 곳도 비원이었다.
1951년 9월에는 중구에 작곡가 금수현이 ‘새로이’ 출판사를 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악보 전문 출판사다. 이곳에서 윤이상의 ‘낙동강’을 비롯해 쇼팽의 ‘이별의 노래’ 등 다양한 악보가 만들어졌다. 이 시기 부산에는 ‘희망’ ‘새벗’ ‘사상계’ 같은 다양한 잡지들이 창간되는 등 부산이 출판 및 인쇄 매체의 중심지 역할도 했다.
중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보수동 헌책방 골목이다. 피란수도 시기 보수동 인근은 서울에서 내려온 중·고교들의 피란학교와 피란 온 대학들이 연합해 설치한 ‘전시연합대학’이 있었다. 학생들만 2만1000여명에 달했다. 지금 보수동 헌책방 골목길은 당시 학생과 교사들의 등·하교 길이었다. 자연스레 학생들의 필수품이었던 중고 교과서가 거래되면서 약 200m에 달하는 헌책방 골목시장이 형성됐다. 이곳은 70년대까지 100여개의 서점이 들어서며 전성기를 누렸으나 현재는 일부 서점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1952년 부산 중구 동광동 현 한성1918 옆의 '비엔나' 다방 모습. 사진 부산근현대사료연구소
박진희 미술평론가는 “피란수도 시기 부산의 다방은 전국에서 모인 미술가에는 전시 장소, 문인에게는 작품 발표 장소가 되는 등 문화센터나 프랑스의 ‘살롱’ 같은 역할을 했다”며 “특히 마땅한 거처가 없던 피란 작가들에게 주소나 연락처를 제공하거나 일자리를 연결해 주는 장소로도 의미가 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