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한반도와 활발하게 교류했던 일본 나라현의 ‘아스카·후지와라 고대 수도’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부산 벡스코(BEXCO)에서 열리고 있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6일 본회의에서 이 유적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확정했다. 일본의 27번째 세계유산이자 22번째 문화유산이다.
아스카와 후지와라는 6세기 후반부터 8세기 초까지 일본 정치·문화·사회의 중심지였다. 이번에 등재된 유산은 나라현 아스카무라와 가시하라시, 사쿠라이시에 흩어진 19곳으로, 궁궐·관청 관련 유적 5곳과 불교 사찰 유적 7곳, 능묘 7곳으로 구성됐다.
아스카궁 터와 후지와라궁 터,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불교 사찰로 꼽히는 아스카데라 터가 대표적이다.
‘아스카 미인’ 벽화로 유명한 다카마쓰즈카 고분과 청룡·백호·주작·현무 등 사신도와 천문도가 남은 기토라 고분, 아스카시대 귀족 정치가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이시부타이 고분도 포함됐다.
이 유적군은 일본에서 고대국가와 수도가 형성되는 과정을 한눈에 보여준다.
초기 아스카에서는 궁궐과 관청, 사찰이 지형에 따라 여러 곳에 분산돼 있었다. 이후 조성된 후지와라에는 궁을 중심으로 도로와 구획을 바둑판 모양으로 배치한 계획도시가 등장했다. 이는 나라의 헤이조쿄와 교토의 헤이안쿄로 이어지는 일본 고대 수도의 원형이 됐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는 이 유적군에 대해 “수도의 발전 과정과 통치 체제의 공간적 의미를 보여주는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두 수도는 고대 일본의 중앙집권 체제가 확립되는 계기가 됐으며, 그 과정은 중국 및 한반도와의 교류를 통해 촉진됐다”고 밝혔다.
후지와라 궁터 유적. 사진 세계유산 '아스카·후지와라' 등록추진협의회
한반도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은 아스카데라다. 『일본서기』에는 588년 백제 위덕왕(威德王)이 승려와 함께 사찰 건축 기술자와 기와 기술자, 화공 등을 보내 건립을 도왔다고 기록돼 있다.
아스카데라는 불교를 지지하던 소가씨(蘇我氏)가 반대파인 모노노베씨(物部氏)를 제압한 이듬해 건립에 착수한 사찰이기도 하다. 당시 불교 수용이 단순한 종교 문제를 넘어 일본 국내의 권력 재편과 맞물려 있었음을 보여준다.
헤이안시대 말 편찬된 일본 역사서 『부상략기(扶桑略記)』에는 593년 탑의 심주를 세우고 불사리를 봉안하는 의식에 소가노 우마코 등 100여 명이 백제식 옷을 입고 참석했다고 전한다. 아스카데라는 중앙의 탑을 세 방향의 금당이 둘러싼 ‘1탑 3금당’ 형식으로 지어졌으며, 동아시아 사찰 건축의 영향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한반도와의 문화적 연관성은 다른 유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카마쓰즈카 고분과 기토라 고분의 사신도·인물상·천문도는 고구려 고분벽화나 당시 중국 회화와 비교 연구돼 왔다.
나라현을 지역구로 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는 등재 확정 직후 담화를 통해 “대단히 기쁜 소식”이라며 “일본의 보물에서 세계의 보물이 된 귀중한 유산을 확실히 지키고 다음 세대로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아스카·후지와라는 1993년 호류지 지역 불교건조물, 1998년 고도 나라의 문화재, 2004년 기이산지의 영지와 참배길에 이어 나라현에 걸친 유산으로는 네 번째 세계유산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