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재산분할 파기환송심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944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한국 역사상 가장 비싼 이혼 소송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현금으로 지급해야 할 재산분할액이 9440억원으로 정해지면서 천문학적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주식담보대출, 지분 매각, 계열사 배당 확대, 비상장 자산 활용, 보유 현금과 부동산 등 가용한 수단을 두루 동원할 것이라고 본다.
가장 유력한 카드는 주식담보대출이 거론된다. 최 회장이 가진 SK㈜ 지분(1297만여주) 가치는 2년 전 항소심 당시 2조514억원 수준이었지만, 최근 반도체 ‘수퍼사이클(초호황기)’에 힘입어 선고일인 지난 24일 종가(63만원)기준 약 8조1700억원으로 4배 가까이 불어났다. 자산 가치가 커진 만큼 담보여력도 늘어난 셈이다. 다만 최 회장 보유 주식의 약 21%(5분의 1)가 이미 대출로 잡혀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담보가치가 주가에 그대로 연동되는 만큼 주가가 꺾이면 조기 상환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난관이다.
이 때문에 SK㈜ 지분 일부 매각 가능성도 함께 언급된다. 보통 지분을 팔면 지분율이 떨어져 경영권이 흔들릴 위험도 커지지만, 주가가 급등한 덕에 지분 단 1%만 매각해도 약 4600억원을 손에 쥐게 되기 때문이다.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최 회장 측 SK㈜ 지분율이 약 31.8% 수준(자사주 소각 시)인 점을 감안하면, 1~2% 매각은 경영권 유지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거란 해석이 나온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주식 가치가 올라 주식의 일부만 처분해도 돼 지배구조의 큰 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SK텔레콤 등 우량 자회사의 배당 확대 ‘카드’도 있다. 지난해 최 회장의 핵심 수입은 SK㈜와 SK하이닉스 보수(82억5000만원) 및 SK㈜ 배당금(세전 1038억원) 등으로 재산분할금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이 배당을 늘리면 SK㈜의 수입이 커지고, SK㈜가 다시 배당을 확대하면 최대주주인 최 회장의 수입이 늘어난다. 이 때문에 항소심 판결 당시(2024년 6월) 하나증권은 “배당금 지불 능력이 높은 SK텔레콤이 배당 증대에 나서며 우량 자회사들의 배당이 그룹 총수에게 직접 전달될 수 있는 구조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개인 보유 자산인 SK실트론 지분(29.4%) 매각도 언급된다. 해당 지분의 가치는 1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현재 두산그룹은 SK㈜가 가진 SK실트론 지분 70.6%를 인수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자금 조달의 ‘시계’는 촉박하다. 판결문 송달 기간(1~2주)과 상고기한(2주)을 고려하면, 최 회장이 대법원 재상고를 포기할 경우 약 한 달 안에 재원 마련의 윤곽을 잡아야 한다. 판결 확정 다음 날부터는 연 5%(하루 약 1억2900만원)의 지연손해금이 붙는다. 재상고 시엔 기약 없는 소송전을 다시 이어가야 한다는 점은 부담이다. 이번 파기환송심 판단은 2017년 이혼 조정을 신청한 지 9년 만에 나온 것으로, 2심이 인정한 1조3808억원에서 약 4300억원 줄어든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