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가격 알림판이 놓여 있다. 전국 주유소 기름값이 10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지만 중동 전쟁이 다시 격화하고 홍해 수출로마저 위협받으면서 휘발유와 경유 모두 가격 하락 폭이 축소됐다. 연합뉴스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면서 하반기 국내 물가 관리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국제유가 급등세가 국내 기름값과 소비자물가를 밀어 올려 가계와 기업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6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4일 두바이유는 배럴당 90.40달러, 브렌트유는 96.78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89.31달러를 기록했다. 일주일 전보다 각각 10달러 안팎으로 높은 수준이다. 특히 브렌트유는 23일 100.69달러까지 치솟아 두 달여 만에 100달러를 돌파했다. 국제유가가 지난달 중순 미국과 이란 간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 후 70~80달러 선까지 안정됐지만, 양측 간 재충돌로 다시 치솟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재봉쇄에 후티 반군의 홍해 봉쇄 선언까지 겹치면서 중동산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진 영향이다.
휘발유와 경유 등 국제 석유제품 가격도 곧바로 뛰고 있다. 지난 23일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 국제 석유제품 가격은 배럴당 경유 167.61달러, 휘발유 124.74달러, 등유 161달러로 각각 지난 4월 30일, 5월 22일, 5월 19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유가는 통상 시차를 두고 국내 석유류 가격과 생산자물가를 거쳐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실제 지난 2월 중동 전쟁 발발 이후 석유류 가격이 오르면서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2% 상승해 2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국내 주유소 기름값은 아직 상승 전환하지 않았지만, 하락세가 눈에 띄게 둔화했다. 7월 넷째 주(19~23일) 전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L당 1872.4원으로 전주보다 5.1원 내렸다. 둘째 주 59.1원, 셋째 주 15.5원 내렸던 것과 비교하면 낙폭이 크게 줄었다. 경유도 L당 1856.9원으로 5.6원 내리는 데 그쳤다. 업계에서는 이번 위기에 따른 조달 차질과 운송 지연이 본격 반영되면 향후 한 두 달 내로 국내 기름값이 다시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다시 물가 안정의 고삐를 죄고 있다. 당초 이달 말 종료 예정이었던 유류세 인하 조치를 9월 말까지 두 달 연장하고, 8차 석유 최고가격을 직전 수준으로 동결하기로 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4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회의에서 “2개월 연속 3%를 상회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월에는 2%대로 낮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국제유가 상승세가 장기화하면 정부 대책도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정을 투입해 가격을 누르는 방식을 무한정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업계는 석유 최고가격제로 인한 누적 손실이 이미 3조원을 넘은 것으로 추산한다. 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에 이어 홍해 항로의 통항 차질까지 장기화하면 전쟁 초기보다 수급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24일 브리핑에서 “손실 보전에 따른 재정 부담은 아직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면서도 “제도 시행이 6개월보다 길어지면 다른 조치를 검토해야겠지만 아직 추가경정예산 등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물가 불안은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도 키우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올렸다. 2분기 경제성장률이 시장 예상을 웃돈 상황에서 7월 소비자물가까지 높은 수준을 이어가면 8월에도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릴 가능성이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