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부산 지역의 한 경찰서 사이버범죄수사팀에 근무하던 경찰 A씨는 과거 유사수신행위법 위반으로 자신이 구속 송치한 B씨를 따로 불렀다. 이후 “향후 항소심 재판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돕겠다”며 10여 차례 만나 현금 400만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수사 상황을 알려주기도 했다. 전국 단위 유사수신 조직의 울산 지부 소속이었던 B씨에게 조직 총책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사실을 유출했다. 또 “인천에 있는 총책을 잡으러 간다”며 영장 집행 상황도 실시간으로 알려줬다. B씨는 조직원들에게 조력자인 A의 존재를 알리며 “사탕(뇌물)을 줬으니 도와주겠지”라고 했다. A씨가 해당 경찰서에서 일한 지 2년 3개월째에 일어난 일이다.
경찰의 한 지역 장기 근무에 따른 ‘향찰(鄕察)’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앞두고 경찰 조직 내에서 벌어진 ‘장윤기 부실수사’ 사건이 계기다. 지역 사정에 정통한 만큼 뛰어난 정보력으로 치안 안정에 기여할 수도 있지만, 검찰 보완수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봐주기 수사나 정보 유출로 이어지기 쉬워 ‘양날의 검’이라는 평가다.
김영희 디자이너
26일 이상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4일 기준 같은 경찰서 소속으로 10년 이상 근무한 경감 이하 경찰 실무진은 총 1만7130명이다. 일선 경찰서 계장·팀장급인 경감·경위로만 한정해도 1만3906명이다. 분석 단위를 지방경찰청으로 확대하면 30년 이상 같은 청 소속으로 근무한 인원도 다수다. 채현일 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4일 기준 경북경찰청 소속 경감 이하 경찰관 중 34년 차는 355명이다. 개청 연도가 2007년으로 늦은 광주·대전청은 19년 차가 각각 804명과 705명, 울산은 27년 차가 348명이었다.
김경진 기자
이처럼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근무할 경우 장윤기 부실 수사 논란과 같은 일이 벌어지기 쉽다는 점이 지적된다. 전·현직 동료 경찰이 수사 대상이 됐을 때 정보 유출 등이 일어나기 쉬워서다.
2019년 경기 지역에서 몰래 불법 렌터카 사업을 하다 파면된 전직 경찰관 C씨가 현직인 동료 경찰관 2명을 시켜 수사 무마·축소 청탁을 한 게 대표적 사례다. C씨는 범행 전까지 이들과 의경 시절부터 알며 9년간 친분을 쌓았거나 경찰 동기로 함께 입직하는 등 친분을 이용했다. C씨는 이들에게 현금, 렌터카 대여 등 방식으로 약 5700만원의 뇌물을 주고 경찰 조사 내용이 담긴 질문지를 미리 빼내거나 “부산 지역 경찰을 소개해 달라”는 등 청탁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이들의 유착은 2024년까지 약 5년간 계속됐다.
지방 근무 경험이 풍부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 지역 사회 영향력 있는 인물 등으로부터 외압을 받는 경우를 수두룩하게 봤다”며 “수사 내용을 제3자가 들여다볼 수 있게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남기거나 전건송치 할 게 아니라면, 지역 순환 근무도 대안으로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유착이 발생하면 안 되는 수사·감찰·정보 등 부서를 대상으로 지역 순환제를 도입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이에 따른 보상·처우 문제를 해결하고, 똑같이 향찰 논란이 빚어질 수 있는 검찰 수사관들에 대한 순환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