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서버가 촉발한 메모리 공급난이 자동차 산업으로 확산하고 있다. 자율주행과 소프트웨어중심차(SDV) 보급 확산으로 차량 한 대에 탑재되는 메모리 반도체도 빠르게 늘어나자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공급망 관리에 나섰다.
26일 반도체·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주요 메모리 업체들은 AI 서버용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램 생산 비중을 늘리고 있다. 시장에선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경우 차량용 메모리 수급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차량용 메모리 반도체는 내비게이션과 오디오 등 주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쓰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디지털 계기판, 차량용 AI, 자율주행 컴퓨터, 차량용 운영체제(OS) 등으로 활용 범위가 확대됐다. 여러 대의 카메라와 레이더, 라이다가 수집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고, OTA(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차량 기능을 지속해서 개선하려면 고용량 D램과 낸드플래시가 필수다. 업계는 첨단 ADAS를 탑재한 차량의 메모리 용량이 기존 차량보다 2~4배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MARC그룹은 글로벌 차량용 메모리 시장이 지난해 75억 달러(약 12조원)에서 2034년 192억 달러(약 31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AI 서버가 HBM 수요를 이끌었다면 앞으로는 SDV와 자율주행차가 차량용 D램과 낸드플래시 수요를 견인하는 또 다른 성장축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메모리 공급망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마이크론은 최근 퀄컴과 삼성전자 자회사 하만, 덴소, 현대모비스 등과 전략적 고객협약(SCA)을 체결했다. 앞서 미국 포드, 제너럴모터스와도 메모리 장기 공급계약을 맺는 등 주요 완성차 업체, 부품사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도 공급망 관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메모리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 등 시장 환경은 녹록지 않지만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과 전략적 협업을 강화하고 네트워킹을 확대하며 적극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르노코리아도 “반도체 부품은 그룹 차원의 글로벌 소싱 체계를 통해 조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량용 시스템 등에 활용되는 삼성전자의 LPDDR5X D램. [사진 삼성전자]
메모리 업체들도 차량용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LPDDR5X와 차량용 UFS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으며 올해 말 온디바이스 AI에 최적화한 차량용 UFS 5.0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SK하이닉스도 고신뢰성 차량용 D램과 차세대 저전력 메모리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빅테크뿐 아니라 독일·일본 완성차 업체들도 메모리를 우선 확보하기 위해 장기 계약과 공급망 관리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AI 서버와 자동차가 동시에 메모리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면서 공급망 선점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