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기자 간담회에서 “상대가 나름대로 성의를 표시할 때 그에 대해서 우리도 금도를 가지고 대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라고 말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병사들은 장군의 장수다운 배포와 금도에 감격하였다”는 예문이 있다. 성의에 금도로 대하라 하고, 장수의 금도에 감격하다니. 여기 보이는 금도는 요즘 접하는 금도가 아니다. 이 사전에 따르면 이 금도(襟度)는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이다.
‘금’은 “흉금을 터놓다”고 할 때의 ‘금’이다. 본래 ‘옷깃’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비유적으로 ‘가슴, 마음, 생각’이란 뜻으로도 쓰인다. “흉금을 터놓다”고 하면 마음 깊이 품은 생각을 드러낸다는 말이 된다. ‘도’는 ‘도량(度量)’이다. ‘도량’의 본뜻은 길이와 양. 여기서 출발해 ‘사물의 양을 헤아림’ ‘너그럽게 용납해 처리할 수 있는 넓은 마음과 깊은 생각’을 뜻하는 말이 됐다.
‘금도’는 한마디로 ‘도량’이라 할 수 있다. 아량이고 포용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뜻의 ‘금도’는 찾기 어렵다. 다음과 같은 문장들 속의 ‘금도’가 대부분이다. “금도를 벗어나고 있다.” “그의 광기가 종교적 금도를 넘었다.” “금도를 지켜 주기 바란다.” 여기서 ‘금도’는 ‘넘지 말아야 할 선’ ‘넘으면 금해야 하는 정도’ ‘지켜야 할 법도’쯤의 말이다. ‘금도(襟度)’가 아니라 ‘금지’의 금을 쓴 ‘금도(禁度)’인 것이다.
‘도량’을 뜻하는 ‘금도’가 아니라고,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라고 지적할 일은 아니다. 한때 국어사전엔 부정적 맥락의 ‘너무’는 없었다. 현실을 반영해 사전의 뜻이 바뀌었다. 넘지 말아야 할 선 ‘금도’도 사전에 실리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