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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의 일본 읽기] 일본 황실의 ‘타임머신’

중앙일보

2026.07.26 08:02 2026.07.2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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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논설위원

박소영 논설위원

일본의 백년노포와 대기업이 수백 년 동안 간판을 지켜온 비결은 유연함에 있다. 아들이 없거나 능력이 부족하면 유능한 사위를 양자로 맞아 가문을 잇는 ‘무코요시(婿養子)’ 문화다. 토요타와 스즈키 등 일본의 장수기업들도 이런 실용주의로 가문과 기업을 지켜냈다.

반면에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간판인 황실은 대가 끊길 위기 앞에서도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됐다. 일본 국회는 최근 자민당 주도로 황실전범 개정안을 참의원까지 통과시키며 최종 확정했다. 만성적인 황족 수 부족을 해결하겠다며 내놓은 대책이지만, 실상은 ‘남계 남성만 왕위를 잇는다’는 만세일계(萬世一系) 원칙을 고수하려는 고육책이다.

이번 개정안은 여성 황족이 결혼 후에도 황실에 남는 길은 열었으나, 남편과 자녀는 일반인 신분으로 남겨둬 여계 계승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대신 1947년 황적에서 이탈한 구황족 가문의 남성들을 양자로 들여 왕통을 잇기로 했다. 황실과 공통 조상을 찾으려면 무려 600년 전 무로마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국민적 사랑을 받는 나루히토 일왕의 외동딸 아이코 공주의 자녀는 왕위에 오를 수 없지만, 그렇게 갈라진 남계 혈통의 후손은 미래의 왕위 계승자가 되는 셈이다.

나루히토 일왕은 이번 법 개정과 관련해 “국민적 공감 속에서 이뤄지길 바란다”고 입장을 밝혔고, 여론도 여성의 왕위 계승에 우호적이다. 그러나 이번 제도 개편은 황실보다 정치의 선택에 가까웠다. 일본 첫 여성 총리가 여왕 탄생의 길을 가로막았다는 역설 속에 자민당은 야당과의 합의까지 깨며 법안을 밀어붙였다. 평민으로 살아온 구황족 청년들조차 황실 입적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백년노포들은 무코요시로 전통을 지켜냈다. 일본 정치는 시대의 변화보다 600년 전 혈통에서 황실의 미래를 찾았다. 같은 전통을 말하면서도 그것을 지키는 방식은 이렇게 달랐다.





박소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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