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조 엔이라는 숫자는 미래를 향한 청사진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청사진에는 청구서가 따라온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정부는 21일 ‘경제재정 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을 확정했다. 핵심은 2040 회계연도까지 민관 합계 370조 엔(약 2조3000억 달러)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침은 향후 수년간 일본의 재정 건전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위험을 키우고 있다고 우리는 판단한다.
이번 지침은 재정 목표를 기초재정수지 흑자화에서 GDP 대비 부채 비율 축소로 바꾸며, 재정 건전성의 기준을 새롭게 설정했다. 문제는 투자 재원을 뒷받침할 안정적인 세원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정부는 ‘연결채(향후 세입으로 상환하는 임시 국채)’ 발행에 의존하려 한다. 지침은 시장의 재정 신뢰를 유지하겠다고 강조하지만, 재정의 지속 가능성은 결국 생산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는 낙관적 가정 위에 세워져 있다.
투자 계획은 공급망 회복력 강화부터 첨단 기술 육성까지 경제 안보와 직결되는 분야를 폭넓게 포괄한다. 그러나 생산 능력을 확충할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생산성 개선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GDP 대비 부채 비율은 오히려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내각부가 수정한 재정 전망은 성장률에 따라 전혀 다른 미래를 보여준다.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에서는 2040 회계연도 실질 GDP 성장률이 거의 2%에 이르고, 세수 증가에 힘입어 부채 비율도 점진적으로 하락한다. 반면 우리의 기준 전망에 가까운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에서는 2030년대 들어 부채 비율이 다시 가파르게 상승해 2040년에는 거의 20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 시나리오가 방위비 증액이나 소비세 인하 가능성에 따른 재정 부담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실제 재정 부담은 정부 전망보다 훨씬 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시장은 아직 재정 악화 위험을 충분히 가격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 최근 세수도 예상보다 견조해 투자자들은 연내 논의될 예산안의 국채 발행 계획을 지켜보며 최종 판단을 유보하는 모습이다. 시장에는 판단을 미룰 여유가 아직 남아 있다.
지침 초안에는 정부가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을 견제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문구가 담겨 있었다. 시장의 부정적 반응이 나오자 다카이치 총리는 해당 표현을 수정했다. 그러나 적극적 재정과 완화적 통화를 선호하는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중앙은행에 정치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순간, 통화 정책의 시계는 언제나 실제보다 늦게 간다.